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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도 Nov 16. 2024

나의 손질 좋은 나무 주걱

좋은 시작과 끝을 함께

애착이 가는 물건이 우리 집에 가장 부산한 곳에 있다. 주방 싱크대 서랍에 투박하게 앉아있는 나무 주걱이다. 그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고 어느 주말 점심엔가부터 손이 착 감겨있었다. 그날은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면 냄새 때문에 식사를 거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국간장과 양조간장도 구별 못하던 요리 문외한이 주방에 들어가 한 참만에 '부야베스' 한 접시를 만들어내던 순간부터 거의 모든 주말에 같이 했던 것 같다.  


딸아이의 초등3학년 생일에 또래 동네 꼬맹이들을 잔뜩 초대해서는 동남아 음식을 지지고 튀기고 끊이고 할 때였다. 세 개의 가스레인지 화구 위에서 웍과 프라이팬 그리고 찜기에서 열기가 솟아오르고 기다리고 있었고 꼬맹이 손님들은 언제라도 들이닥칠 수 있었다. 가정식은 세프의 요리를 점잖게 앉아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손님이 오면 음식이 당연히 나와야 하고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손님은 식욕을 잃어버린다. 그 짧고 강렬한 집중의 시간동안 기름이 튀고 음식이 넘치는 위기의 순간이 몇 번이나 왔지만 오히려 초침의 박자를 쪼개는 바이올린의 활처럼 주걱이 화구 위를 부지런히 오간 끝에 음식들이 완성이 되었다. 다섯 가지 음식 모두 처녀작이었는데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몇 년 동안 함께했던 나의 손질 좋은 나무 주걱이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손질 좋은 나무 주걱은 세월의 흔적과 사용감이 많다. 언제부터 함께였는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처음이라고 빛난 적도 없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노쇠함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 특성상 끝이 하얗게 일어나고 닳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재료 속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는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이라 빛나지도 않았지만 오래되었다고 바래지도 않는다. 언젠가 깜박하고 웍 끝에 올려놨다가 손잡이 쪽에 가로로 그을음이 생겼는데 티가 나지 않는다. 세월감이 있는 주걱이라 그런지 그 가로로 난 그을음도 장식처럼 잘 어울린다.  


나와 가족은 시간이 주는 연륜과 안정감을 사랑한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더 큰 애착을 갖는다. 집에 들어온 물건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서로 무심하게 언제 왔는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지 시시콜콜하게 묻지 않는다. 그가 나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나도 그와의 손질이 편안하면 아주아주 오래가는 그런 사이이다. 나는 다음 주말에도 나의 손질 좋은 나무 주걱과 좋은 시작과 끝을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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