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사진을 찍으며 생각한 것
실천26. 생얼도 예쁜 마음 가꾸기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중이다. 신혼여행 이후 서랍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남편과 내 여권은 10년의 유효기간을 훌쩍 넘겼고, 아이들 여권도 신규발급받아야 하기에 여권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다. 단정한 상의를 입고, 머리카락이 눈썹에 닿지 않게 앞머리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다. 사진사님 지시에 따라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가 왼쪽으로 아주 살짝 돌렸다가 입술 양 끝에 매달린 긴장감을 느끼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찰칵!
전문가용 카메라로 찍은 내 얼굴은 매일 거울을 통해 만나는 내 얼굴과 어쩜 그리 다른지. 초등학생 두 아이는 카메라 어플로 고양이도 되어보고, 똥 밟을 뻔한 신발 밑창도 되어봤지만 포토샵으로 하나하나 사람 얼굴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마술사의 공연이라도 보는 듯 사진사님 옆에 앉아 전문가의 손길이 엄마얼굴의 대칭을 맞추고 머리숱을 풍성하게 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우와~'를 연발했다.
민망해진 나는 괜히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얼굴들은 실제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상상해 보았다. 잠시 후, "한 번 확인해 주세요~"라는 사진가님의 부름에 외면했던 모니터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모니터 아래에는 손님들을 위한 선택지처럼 보이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1. 내가 아니어도 된다.
2. 난데 예쁜데 나로 만들어 달라.
3. 난 이미 완벽하다. 안 해도 된다.
특별히 요구사항을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내 얼굴은 3번에서 시작해 2번을 지나 1번에 도착하기 직전에 멈춰있었다. 내가 아닐뻔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확실히 보기 좋았다. 메이크업과 헤어 드라이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면 사진 속 어여쁜 나와 조금은 비슷해지려나.
실제보다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은 게 외모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을 만난 후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마음을 다듬고 포장해서 내놓는데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 아닐까. 직장에 있을 때는 전혀 내가 아닌 상태인 1번의 마음으로 꾸미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는 적당한 예의를 곁들인 2번을, 가장 가깝고 아끼는 가족들에게는 3번 상태의 마음을 보여줄 때도 자주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곱지 못한 내 생얼처럼 내 '생 마음'도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것, 그래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히 주변의 의견을 따랐던 나는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정말로 착하다기보다는 그저 울퉁불퉁한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마음뽀샵의 달인이 나였구나.) '착하다'는 포장지로 겹겹이 쌓여있던 것을 풀어보니 날카롭고 끈적이고 어두운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하던 대로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못난 마음을 무작정 아닌 척 꾸미고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부처님이 아니고, 마음그릇은 비 온 뒤 말라가는 물웅덩이만큼도 깊지 못하기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밤낮없이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는 순간순간 날 것의 마음을 꺼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지낼 때는 무리 없이 숨겨두었던 얕은 마음이 탄로 나고 어김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가운데, 이런 그늘진 마음도 괜찮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서툴고 설익은 마음을 건네받아 보듬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날카롭고 끈적이고 어두웠던 내 마음을 눈물로 씻겨주고, 따뜻한 말로 매끈하게 다듬어주고, 반성과 다짐으로 단단히 굳혀주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지내면서 어느 정도의 꾸밈과 예의는 필요하겠지만, 내가 다른 이들과는 이런 찐한 과정을 겪어보지 않아서 마음 한켠이 늘 외로웠던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꾸민 마음만을 보여주었기에 어느 선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고 거리감을 느꼈나보다. 내가 아닌 걸 내 모습이라고 내걸어두었으니 그게 들킬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게 당연하다.
아름답게 화장한 얼굴도 보기 좋지만 생얼이 예쁜 사람을 보면 다들 감탄하는 것처럼, 내 본래 마음도 곱게 다듬어서 마음미인이 되고 싶다. 로션 바르면서 오늘의 감사한 일을 떠올리고, 팩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한 뼘 더 이해해 보고, 마사지하면서 '다음엔 나도 그렇게 해봐야지' 배울 점을 되새기다 보면 내 마음을 내세울 때도 '내가 아니어야 하는' 1번에서 '내 모습 자체로 당당한' 3번 쪽으로 조금은 변할 수 있을까. 여권사진을 바라보며 뽀샵이 필요 없는 고운 마음도 함께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