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사무실 동료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어머, 누구세요?"
"무슨 충격적인 일이라도 있었어요?"
1년 반 넘도록 방치하며 가슴까지 기르던 머리를 겨우 귀를 가릴 정도로 짧게 자른 탓이었다. 워낙 큰 변화라서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사무실에 들어섰지만,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변명하듯 서둘러 헤헤헤 바보 같은 웃음도 지어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두 아이들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드나들면서도 정작 내 머리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생각보다 비싸서 평소에 발걸음이 어려웠던 미용실에서 마침 50% 할인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주말 오전 시간에 예약을 잡았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해도 피아노의 상태에 따라,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지듯이, 사진 속 헤어스타일이 내 머리카락과 얼굴을 만나면서 예상과 다른 멜로디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몇 번이고 겪은 터라 디자이너 선생님과 스타일을 상담하는 시간은 늘 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사실 딱히 정해둔 스타일도 없었다. 그저, 원피스 지퍼에 걸리고 식사 중 국물에 빠지는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싶었을 뿐이다.
어머나, 세상에. 머리를 자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큰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서걱서걱 가위가 지나간 자리에 목덜미가 드러나는 순간 알 수 없는 쾌감마저 느꼈다. 상한 걸 알면서도 방치했던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 나를 어지럽히던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정리하고 싶었나 보다. 발밑에 쌓인 머리카락 더미가 어쩐지 과거의 못난 조각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오랜 습관, 미련, 불필요한 걱정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무거운 어깨가 가벼워지는 기분마저 들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홀가분함에 흠뻑 빠져들었다.
상하고 갈라진 머리카락이 가위질 한 번에 사라지듯 내면의 변화도 이토록 간결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의 손길 한 번으로 불만족스러웠던 내 모습이 산뜻하게 변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가뿐해질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항상 첫 시작이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흐린 눈으로 넘어가는 것도, 과감하게 변신하는 것도 모두 결국 내 손에 달렸다.
미용사의 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르듯, 나 역시도 내 마음속에 쌓인 걱정이나 버리고 싶은 습관들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자). 미용실에 가기 전에는 그저 피곤함을 핑계로 미뤄왔지만, 가벼워진 머리와 함께 내 안에 자리한 복잡함도 이제는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못 본 척해왔던, 다양한 고민을 가진 내 마음 속 수많은 나를 떠올려본다. 산발머리 그들을 위해 미용사로 변신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