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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Jul 08. 2021

일보다 육아가 힘든 이유

슈퍼 갑님이 찍은 사람이 육아 담당자다.

"밭 맬래? 애 볼래?"

이렇게 물으면 밭맨다고 하며 다 밭으로 나간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것이다. 육아를 하기 전엔 애 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며 직접 아이를 키워보니 왜 육아가 어떤 일보다도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 복직하고 보니 정말 육아만큼 힘든 일이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돌 전까지는 육아가 그 어떤 일보다 힘들었다.    

  


첫째. 육아는 퇴근시간이 없다.

끝이 없다는 것은 에너지를 언제 써야 하고 언제 비축해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한반복적으로 에너지를 방전되지 않을 만큼 사용하다 떨어지기 직전에 충전을 쉼 없이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한 시간 뒤면 퇴근시간이야. 얼른 끝내자.’며 지친 몸을 추슬러 마지막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다. 육아에선 마지막 에너지란 없다. 에너지는 조금씩 항상 남겨 둬야 한다.   

Image by Nile from Pixabay

슈퍼 갑님이 찾으시면 들었던 숟가락도 얼른 내려놓고 가보는 것이 좋다. 먹던 밥이라 마저 먹고 가면 그 곱절의 시간을 슈퍼 갑님께 곤욕을 당할 것이 뻔하기에 슈퍼 갑님이 불으시면 얼른 가보는 것이 상책이다.      


슈퍼 갑님께 육아 담당자로 지정된 후 나의 온 신경은 슈퍼 갑님께 자연스럽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슈퍼 갑님을 향한 나의 온 신경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자다가도 슈퍼 갑님의 조그마한 뒤적임에도 내 눈은 번쩍 떠졌다. 내가 이렇게 예민했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의 본능적인 감각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슈퍼 갑님의 생활 리듬에 나의 몸도 맞춰야 에너지 방전 없이 퇴근 없는 근무환경을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슈퍼 갑님이 나를 호출하는 시간 간격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육아는 성과측정과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

슈퍼 갑님의 성장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입장으로서 내 노동에 대한 성과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슈퍼 갑님이 식사하신 후, 일(?)을 보신 후 내가 얼마나 뒤처리를 깔끔하게 했는지 객관적인 성과측정은 불가능하다. 내가 하는 노동에 대한 객관적인 성과측정 도구도 없다. 오직 슈퍼 갑님의 주관적인 표정으로 나의 노동에 대한 만족도를 가늠할 뿐이다.


또한 슈퍼 갑님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었던 나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팔목이 아픔에도 슈퍼 갑님의 안위를 위해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뒤처리를 했는지, 물의 온도를 얼마나 적정하게 맞췄는지, 슈퍼 갑님의 위생을 위해 얼마나 여러 번 닦아드렸는지 before, after를 비교하며 내 성과를 측정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완료 후 성과가 수치로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을 당당히 어필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그에 따른 프로모션을 받기도 한다. 내 통장에 찍힌 숫자로 나의 노동의 대가를 눈으로 확실히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육아는 수치로 성과측정도 할 수도 없을뿐더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상도 없다.


     

셋째. 육아는 분업이 불가능하다.

요즘은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준다며 육아는 분담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장 자체에서도 ‘도와준다’는 동사가 육아 분야에 대해선 아직 분업이 안됐음을 의미한다. 육아가 분업이 제대로 되어있다면 주체가 누구더라도 동사는 ‘한다’가 맞을 것이다.


육아라는 분야는 겪어보니 분업을 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분업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슈퍼 갑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육아 담당을 해야 집안이 평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퍼 갑님의 취향은 잘 변하지 않아 한번 낙점된 사람은 앞으로 슈퍼 갑님이 스스로 먹고, 씻고, 옷 입을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밀접히 수발을 들어줘야 한다.


또한 육아가 분업이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슈퍼 갑님이 항상 같은 사람을 호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슈퍼 갑님의 식사 수발을 할 때였다. 슈퍼 갑님이 속도를 내지 않아 수발 시간이 길어져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남편에게 후반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업은 슈퍼 갑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더 이상 밥은 먹지 않겠다며 입을 꾹 다무는 사태를 발생시켰을 뿐이다.


한때는 독박 육아를 한다는 억울한 마음에 전반부, 후반부로 나눠 남편에게 분업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나의 예상과 다르게 나의 업무시간만 더 늘어나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육아를 분담하는 것보다 육아와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퇴근도 없는 육아.

보상도 없는 육아.

분업이 불가능한 육아.     


누구는 그런다.

“아이 미소를 보면 모든 피로가 풀려요.”     


난 그렇지 않았다.

아이 미소는 내 통장에 찍히는 월급에 비해 너무 빨리 사라졌다. 아이의 미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과 짜증으로 변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랑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짜증내고 울어버리는 모습에 배신감마저 들 정도였다. 너무 변덕스러워 아이의 미소에 다음에는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 부질없는 결심도 해봤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여름 육아는 내 몸에 착 붙어 있는 슈퍼 갑님으로 인해 특히나 기운 빠지고 힘이 든다.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슈퍼 갑님, 하지만 이미 이 기간을 거쳐간 선배맘들은 언젠가는 떨어진다고 그랬다. 나를 지정하고 나만 찾는 슈퍼 갑님을 두고 육아에 뭘 바라는 것은 수치상 맞지 않다.      


육아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

그냥 슈퍼 갑님이 나를 찾을 때 같이 있어주는 것 그뿐이다.  

훗날 아이가 커서 내가 외로울 때, 아이의 바짓가랑이 잡고 같이 있어달라고 진상 부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아이가 같이 있어달라고 할 때 같이 있어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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