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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21. 2023

풍요로운 숲 속을 거닐거나 떨어지는 경험

<키키 스미스 -자유 낙하 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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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전 ( ~ 2023. 3.15)

얼마 전에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키키 스미스'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선배에게 전해 듣고 꼭 와보고 싶었다. 미술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숲 속에 들어온 듯한 향이 훅 끼쳐왔다. 재작년 여름 장마 때 갔던 제주도 비자림에서 맡았던 냄새와 아주 흡사한 향.

미술관을 들어서자마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숲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차가운 공기에서 따뜻한 공기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숲향.

Are you ready to 'free fall'?

1954년 생인 키키 스미스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전방위 예술가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만 해도 회화와 조각, 사진과 판화, 대형 테피스트리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사실 작가의 남다른 점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는 사실 보다 그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시선이었다.


키키스미스가 25세의 나이로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1980년대의 미국은 60년대의 히피운동과 70년대의 페미니즘 문화의 영향이 강하던 시기로, 키키 스미스는 남성예술가가 포진하고 있던 전통 회화보다 사진이나 퍼포먼스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기존 예술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성 작가들이 다루었던 여성의 몸이 성모처럼 '성스럽거나' 소녀처럼 '순수'함을 표현했다면, 키키 스미스는 먹고 숨 쉬고 배설하는 물질적인 몸을 작품으로 만들어 미술관에 세웠다.

<메두사> 2004. 청동 다이아몬드 조각
<메두사> 2004. 청동 다이아몬드 조각

작가는 여성의 신체를 이루는 여러 장기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다가 30대 이후부터 여러 점의 성모조각상을 만들었는데, 키키의 성모는 우리 눈에 익숙한 피에타나 수태고지 도상 속의 거룩한 여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눈 뜨면 매일 거울에서 보는 '나'의 몸을 가진 여성이었다.


 피부표현을 생략하고 바로 근육을 드러낸 채 서있거나(1992년 제작 '성모마리아')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듯 의자에 앉은 채 왼손바닥이 보이도록 들고 있는 (2008년 제작 '수태고지') 성모는 자신의 몸을 물질로 자각하고 결정권을 쥐고 있으려는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성모 마리아> 1992.  밀랍, 무명, 나무
<수태고지> 2008. 알루미늄, 나무


그렇지만 키키 스미스가 표방하는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젠더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20대에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을 겪은 이후 인간의 신체가 유한하면서도 다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끝없는 물질의 순환과정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나무나 동물들까지 키키 스미스에게 인간은 거대한 생태계의 동등한 참여자인 것이다. 생태계를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우주라고 보는 세계관은 오래된 신화와 민담, 동화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어온 관계에도 관심을 돌리게 했다.

대형 태피스트리 속의 여성은 하늘과 땅을 잇는 여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작품 속으로 초대하는 키키스미스 자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늘> 2012. 면 자카드 테피스트리
<지하> 2014 면 자카드 태피스트리

미술관 입구에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과정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아이처럼 그녀는 어떤 재료에도 구애받지 않고 어떤 형식에도 갇히지 않고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이 세계의 불행과 위기에 대해 발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키키 스미스가 보여준 세계는 달콤한 열매와 천적이 공존하는 숲처럼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 풍요로운 숲 속처럼 크고 깊었다.

키키 스미스 (Kiki Smith, 1954~    )

망원동의 향수샵인 '수토메 아포테케리'라는 곳에서 이번 전시에 맞춰 제작했다며 3층 아트샵에서 룸스프레이를 판매하고 있었다.

Kiki Smith Room Spray <free fall>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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