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할머니를 위하여

시를 읽는 오후

by 루씨

함께 세미나를 하는 언니 양이 네이버카페에 시를 한 편 올려주었다. 아주 오래 살아서 더 이상 나이를 먹을 것 같지 않은 한 여성에 관한 시였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노파'라는 단어의 뜻을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 시를 읽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신미나 *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당신은 오래 보는 사람이었지

계단 위에서 계단 아래를


거기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 자라

한꺼번에 살아버리려는 듯이 긴 한숨을 쉬었지


죽어버려야겠다

너도 죽을 거야

그 말을 하고는 당나귀처럼 이상하게 웃었지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당신은 알 수 없는 사람

새끼를 낳자마자 물어 죽인 개를 이해했지

(… 중략)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닭을 잡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내올 때는 악기를 다루듯 했어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어 올릴 때처럼

터진 냄비 뚜껑을 가볍게 들어 올렸지


자, 야생의 시간이다

열 손가락에 기름을 묻히고 살코기를 발라주었지

포크를 쓰지 않고 힘줄을 끊었지

밤색으로 그을린 발등

손등에 돋은 검버섯이 흙의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지?

오직 당신의 것, 당신 자신이 된, 당신의 몸을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당신은

여덟 번 아이를 낳았고 피를 몇 되나 쏟았지

뙤약볕을 욕하면서 쇠뜨기를 쥐어뜯었지

(… 중략)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당신은

곡주를 맛보고 소매로 입가를 훔쳤지

찡그리듯 웃었다고 비웃는 게 아니야


어느 날,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손을 펴봐라

바늘에 실을 길게 꿰어

손바닥 위에 늘어뜨렸지

피돌기를 따라 바늘이 점괘를 낸단다

왔다 갔다

호를 그리며

너는 딸 하나에

아들 둘

자식 셋을 낳을 거야


틀렸어요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뿐인걸요

(…)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 당신은

자벌레처럼 몸을 늘여서

허리를 반으로 접고

또 접고

한 줄씩

들어간다

나의 시 속으로


그리고

계속 계단


계간 『문학동네』 (2021년 여름호)


* 신미나 시인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 시를 읽고 나서 딸들이 어렸을 때 함께 읽었던 동화책 속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숲 속에 사는 마녀 '바바야가'와 난쟁이들의 오두막을 찾아가 백설공주에게 보석 박힌 빗과 독사과를 권한 방물장수. 헨젤과 그레텔 남매를 잡아먹으려고 과자집을 지어놓고 유인한 마녀. 물론 이 시에 나온 노파는 쉼 없이 낳고 먹이느라 거죽만 남았지만 어린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넌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 거다'라고 말해주는 할머니일 테다. 남을 돌보는 것과 자기를 돌보는 것의 경계가 지워진 여성들.

나이를 많이 먹은 늙은 여성들은 세상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유익할 수도 있고 아주 해로울 수도 있다. 그들은 음산함은 세상의 진실을 꿰뚫고 있는 통찰에서 나오는 기운이기도 하다. 그들은 생명의 시작과 끝을 꿰뚫고 있어서 살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나의 고모는 이제 겨우 칠십 중반인데도 죽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일상적 말투였지만 전혀 허툰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박복하게 살아왔든 유복하게 살아왔든 그건 세상사람들의 평가일 뿐이고 주어진 삶을 피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온 여성이라면 누구나 존엄한 빛을 두르고 있는 것 같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피와 불을 가까이하고, 생선과 고기의 뼈를 거침없이 가르고, 맞고 틀리는 데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앞날을 읽어내는 힘이 커져가는 늙은 여자들은 죽음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기도 하고 삶 안에 죽음을 언뜻언뜻 펼쳐 보이기도 한다. 나도, 내 친구들도, 아는 언니들도, 후배들이나 내 딸들도 차차 그렇게 되어갈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걱정할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들 씩씩하고 용감하게 '음산하고 야성적인' 할머니가 될 사람들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