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겨울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하다. 오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3도까지 내려갔고, 한낮에도 영하 7,8도에 머물렀다.
며칠 전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요양원 원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요 며칠 새 어머님이 자주 토하셔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요지였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병원과 구급차 예약을 해두고 오늘 낮에 다녀왔다. 사설 구급차가 한 시 반에 도착해 요양원의 끝방에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이동침대로 옮겨 현관으로 나왔다. 바깥 날씨가 워낙 추워 미리 준비해 온 담요를 두 겹이나 덮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이동침대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요즘은 도무지 어머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이틀 전 교환학기를 마치고 귀국한 작은 딸 K가 요양원에 가서 면회를 했을 때도 어머니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평소의 어머니 같았으면 '어디 좀 보자. 우리 아기가 그 낯설고 먼 데 가서 얼마나 고생했냐. 얘 얼굴 좀 봐. 아유 뼈만 남았네.'라고 하시며 잠시도 쉬지 않고 손녀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데 K가 바로 눈앞에서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고 해도, '할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해도 아무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셨다.
작년 겨울에 주가 만들어준 조끼를 입고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떠올랐다. "세상에. 얘 손 야문 것 좀 봐라. 진주단추에 하얀 레이스까지 달아놔서 아주 이쁘구먼 그래. 공부하느라 바쁜데 이런 건 또 언제 만들었대. 고맙다.고마워." K는 다음에 더 예쁜 옷을 만들어드리겠다고 했고 어머니는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시며 옆에 둔가방에서 용돈을 꺼내 손녀의 손에 쥐어주셨다.
오늘은 원래 신장내과에 진료예약을 했었다. 하지만 의사는 소변 색이 묽은 건 별 문제가 아니라며 소화기내과로 연결해 주었다. 내가 수납창구와 진료실 사이를 오가는 동안 아버님은 휠체어 뒤에 서서 어머님의 고개를 팔로 고정시키셨다. 분홍 플리스재킷을 걸치고 누빔 면바지와 수면 양말을 신었는데도 어머니의 몸을 너무 가냘파 보였고 고개는 자꾸 앞으로 옆으로 넘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침과 함께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닦을 것을 찾아 허둥대는 사이에 옆에 있던 간호사분이 핸드타월을 두툼하게 갖다주셨다. 속옷이 젖으면 차가워질 것 같아서 얼른 닦아낸 다음 타월을 여러 장 받쳐두었는데, 어머님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일 뿐 곤혹스러움 같은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
나는 자꾸 편찮으시기 전, 자존심이 강하고 정이 많던 어머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지를 상상하게 되어 깊은숨을 쉬게 되었다. 당신의 시부모님을 집에서 직접 모시며 혼자서 병시중을 하셨기 때문인지 어머니는 자식에게 짐이 되는 상황을 병적으로 꺼리셨다. 그래서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몇 달간 치과치료를 받을 때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지금 어머님이 누구에게도 말문을 여시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삶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난 스스로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지 때문인지 모르겠다.
지난해가을 퇴원하시던 날, 입원실에 들어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님의 표정에 무척 서운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대로집으로 가 몸을 뉘이고 싶은데 당신을 낯선 요양원에 입소시키는 나를 원망하듯이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이미, 우리와 당신의 삶을 분리시킬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진료를 끝마치고 처방약까지 챙겨 어머니를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린 후 아버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동 중에 혹시 추울까 싶어 챙겨갔던 밍크코트와 담요를 다시 옷장 안에 챙겨 넣고
식탁에 앉아 아버님과 커피를 마셨다. 달고 뜨거운 믹스커피를 한 모금 넘기니 뻣뻣했던 어깨가 좀 펴지고 밭았던 숨도 길게 내쉬어졌다.
"이제 엄마는 엄마의 길을 가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맞은편에 앉아계신 아버님이 커피잔을 식탁에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좀 어떠냐고 기분을 물어보아도 아무 반응이 없고, 친척들 소식을 전해주어도 묵묵부답이니 그렇게 혼자 떠들다 집에 돌아오면 너무 힘이 든다고 하셨다. "처음에 병원에 있을 때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어. 이게 나을 병이 아니니까 애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때 엄마는 이미 안된다고 알고 있었던 거 같다."
2월부터는 **요양원이 두 달간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그래서 인근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일주일 안에 다른 기관으로 옮겨야 한다. 요양병원은 수용 인원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가정식 요양원보다는 밀착 관리는 안될 테고 집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면회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요양병원의 장점은 응급상황에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 환자가 어느 곳에 머물지는 가족과 기관의 상황에 달려있을 뿐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는 자기 몸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젊고 건강할 때는 신체가 '나'라는 존재 그 자체인 양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몸을 관리하지만, 늙고 병이 들면 몸은 우리 존재를 담고 있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 성격과 호불호가 또렷했던 정신도 쇠약해진 몸과 함께 희미해져 버린다.그래서 이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라는 실체가 존재할 수 있는 건지판단할 수가 없다.
나는 어머님의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나 역시 생의 마지막 구간은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병고를 마주하며 혼자 낮과 밤을 보내게 되겠구나 짐작한다. 어쩌면 그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 수도 있다.
어머님은 당신이 직접 집에서 부모님을 모셨고, 나는 부모님을 기관에 의탁하고 찾아뵙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눈부신 속도로 발달해 가는 디지털 기술은 다음 세대에게 훨씬 더 영리하고 합리적인 방식의 돌봄 노동을 제안할 것이다.
어머니가 홀로 견디고 계신 시간을 생각하면 먹먹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면 나의 늙어감과 어영부영하는 사이 놓칠지 모를 나의 즐거움도 영악하게 헤아린다.
젊음과 늙음, 병과 건강, 즐거움과 괴로움,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원하는 것만 고를 수가 없다는 사실은 절망인 것 같기도 하고 구원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