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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ul 21. 2024

완벽하지 않은 분유라도 괜찮아

모유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골밀도 수치가 무척 안 좋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월경을 오래 하지 않았고 이것이 골밀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던 대학병원 의사의 권유로 곧바로 경구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생리를 하면서 주기를 맞추고, 칼슘제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은 게 몇 년이다. 그러나 출산 후 검진에서도 전혀 나아진 게 없는 골밀도 수치.


“즉각 단유 하세요.”


낮은 골밀도가 모유 수유도 할 수 없게 하고야 말았다. 그냥 젖에서 나오는 물이 아닌 모유는 그야말로 산모의 피땀눈물이다. 모체의 피를 걸러내 만들어지는 모유, 혈액을 모유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 유선을 통해 아기에게 전달된다. 이때 모유의 칼슘 성분은 모체 뼈의 칼슘이 녹아 만들어진다고.

모유 수유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젖을 물리고, 호르몬이 많이 도는 새벽에 유축 또는 수유를 해야 젖이 잘 돌기 때문에 엄마 몸 축나는 건 필연적이다. 남편이 도와줄 수도 없는 모유(왜 젖은 남편에게 안 나오는 것인가) 수유를 몇 개월에서 1년 넘게 할 생각만 해도 힘들었다. 그런데 단유를 ‘해야 한다’고 진단을 받으니 갑자기 서글픈 것이다. 양쪽 가슴이 제 역할을 하는 날을 맞이한 듯한 기분에 젖 양도 남부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기가 먹성이 좋아 수유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종종 아기가 세게 빨면 따끔한 것은 물론 건조하게 갈라지는 유두균열에, 젖이 차면 아프기는 또 얼마나 아픈지. 연가시가 든 것처럼 끝없이 목이 마르고 속도 계속 허전한 것을 보면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다.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한 느낌은 내 몸의 영양분이 쪽쪽 빠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도 젖을 잘 찾아서 오물오물 먹는 아기 모습이 그리 사랑스러울 수 없고 아기와 내가 분리된 이후 다시 연결된 듯한 유대감은 특별하다. 아기를 내려다보느라 목이 거의 구십 도 이상으로 꺾여 담이 올 것만 같은데도 자꾸만 더 내려가는 내 모습이 문득 낯설었다.


 “모유 수유하지 말라셔.”


 골밀도가 안 좋은 건 진작 알고 있었기에 단유해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는 아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첫마디를 꺼내기가 무섭게 눈물이 또륵또륵 떨어졌다.


“아기한테 제일 좋다는 모유인데 내가 건강하지 못해 못 준다니…”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눈치 없게 젖이 자꾸 흘렀고 내 눈물은 더 많이 흘러버린다. 남편은 곧바로 분유를 주문한다며, 엄마 몸이 더 중요하지 속상해 말라 말한다. 이성적으로는 나도 알겠는데 감정은 복받쳐 오르는 게, 출산 직후 더 예민한 호르몬 때문일까. 육아에 있어 체력이 첫 번째인데 뼈가 약하다는 사실도 육아 시작도 전에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늘어난 젖 양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는 없기도 해서 천천히 수유 횟수를 줄여나갔다. 수유 시간이 기다려졌다. 한 번 젖 줄 때마다 줄 수 있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고 점점 더 잘 먹는 아기를 보니 미안해지기도 했다. 젖이 차서 아플 때쯤 아기가 배고파하고 내 아기가 먹는 양과 비슷하게 젖 양이 늘어나는 블루투스 연결처럼 진기한 현상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구나.

 ‘아기에게 모유만큼 완벽한 음식이 없다 ‘는 말이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모유수유를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은 엄마인 나 중심적 생각,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하게 된 지금 그것이 원망스럽게 들리는 것은 아기 중심적 생각.

 엄마가 되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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