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체 Ceviche
아침에 배송된 싱싱한 광어는 손질한 다음 랩으로 밀봉해둔다.
셰프가 일주일 간 사케를 두 번씩 앞 뒤로 발라가며 말린 광어를 꺼내온다.
"이렇게 얇게 하나씩 썰면 돼"
나에게 임무를 맡겼는데 쓰윽 썰리던 셰프의 칼끝과 달리,
반건조된 생선은 단단해지기 전 속살만 찰기가 남아있어 도마에 닿은 부분이 납작해지지 않고서야 셰프의 본보기처럼 나오지 않는다.
한 토막 반건조 생선을 20여분 걸려 썰어두니, 이번에는 허브의 일종인 마조렘 Majoram을 한 무더기 쥐어주며 실처럼 얇게 채 썰란다. 손바닥에 땀이 날만큼 집중해서 해도 다 썰고 흩뿌려보면 끝부분들이 덜렁덜렁, 끝까지 썰어지지 않은 게 태반이다.
우리 독일 막내는 토마토를 블랜칭 하고 씨를 걷은 뒤 건조한 토마토 콩퓌 Tomato confit를 오전 내내 만들었다.
백만 불짜리 미소를 가진 벨기에 동생은 오렌지와 라임 10개를 하나하나 제스트를 내고 즙을 짰다.
야무진 캐나다 친구는 식용 꽃의 끝머리를 다듬고, 파슬리를 나만큼 공들여 채 썰었다.
매주 자기 손가락을 베어버리는 허당 네덜란드 동생은 다행히 이번엔 손은 두고 오렌지 과육을 예쁘게 썰어냈다.
숨길 수 없는 장난꾸러기 벨라루스 동생은 호텔 레스토랑 경험자답게 랩 해둔 광어를 그럴듯하게 썰었다.
어찌어찌 마조렘을 다 썰고 난 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라임, 오렌지즙과 함께 소금을 넣어 광어를 15분간 향긋한 목욕을 시켜준다.
세비체 한 접시가 탄생하려는 순간이다.
우와, 우와~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와 상큼 달콤한 향에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본인이 맡게 된 부분에만 집중하다가 모든 게 모여 근사한 한 접시가 완성된 것을 보니,
뿌듯함과 약간의 감동이랄까, 마치 오케스트라 같았달까.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는 우리를 본 셰프가 진지하게 말했다.
"... Oui, Chef!(예스, 셰프!)"
쫀득한 반건조살과 탱글한 날생선, 상큼한 라임과 달콤함을 내뿜는 토마토, 싱그러운 허브의 오밀조밀한 조화.
침착함과 빠릿빠릿함,
부분과 전체,
말하자면, 밀당을 잘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