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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Oct 26. 2021

개똥이의 전설

첫 번째 외상환자수술 이야기

다급한 메신저 알림에 모두가 긴장한 어느 날이었다.

중증외상센터를 세팅하고 있는 단계라, 아직까진 경증 환자들만 오고 있는 상태라, 하나쯤 중증 환자가 올 때도 되었는데 싶어 할 무렵...


50대 남성, 계단에서 넘어진 후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 후 회복한 환자

배는 매우 많이 불러있고, 혈압도 낮았다가, 다행히 회복은 한 상태. 하지만 

초음파와 CT에서는 복강 내 출혈로 의심되는 액체들이 고여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30분 안에 수술방을 열고, 모두가 모여 첫 번째 외상환자 응급수술을 들어갔다. 복강 내 출혈 환자의 수술은 생각보다 매우 긴박하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1 조수가 석션하고, 집도의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출혈 지점을 찾아 잡거나, 누를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배를 연 순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출혈로 의심되었던 부분은 위궤양 천공으로 인한 지저분한 액체였으며, 어디에서 출혈 소견은 없었다. 다만 궤양의 범위가 넓고,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을 봤을 때, 외상으로 인한 손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꾸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환자는 가족 없이 홀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충무로의 한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양상태도 좋지 못하고, 잦은 음주를 하였던 그는 위궤양 천공으로 인한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나오던 중, 기력을 잃고 계단에서 넘어진 것으로 보인다.

혈압이 초기에 낮았던 것은 출혈이 아니라 패혈증으로 인한 저혈압 상태였고, 어찌 됐든 환자는 계단에서 넘어져서 빨리 발견되었고, 모두가 외상환자로 인지했기에 이렇게 빨리 수술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살 사람의 운명이란 그런 건 가보다.


하지만 환자는 그동안의 영양상태가 워낙 좋지 못하여 혼자서 호흡을 하기 어려웠다. 오랜 시간 호흡보조가 필요했고, 기관절개술까지 시행받았다. 다행히도 일반병실로 전동 된 이후에는 근처 병원으로 전원 갈 정도까지 회복하였다. 다만 기관절개술을 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잠깐 막고 이야기를 하거나, 주로 글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환자의 경제사정상 사회사업실의 지원을 통해 병원비는 어떻게는 해결되었지만,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는 사설 구급차의 비용은 당장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큰 비용은 아니라 우리 의료진이 십시일반 해서 보태주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을 때쯤, 환자가 이를 인지했는지 회진 때 종이에 의견을 적어주었다.


"우리 집, 지갑 안 23만 원",


그리고 "개똥이" 




본인 집에 지갑이 있다는 얘기는 알겠는데...

개똥이라...

사람 이름인가?


인터넷 검색창에 혹시 쪽방촌의 이름인가 싶어서 검색도 해보고 했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를 꼬박 고민하던 차에, 다음날 아침 주치의를 맡고 있는 전공의 선생에게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로


"선생 민... 그... 그 사람... 찾았습니다!!. 그... 개똥이!!"

"뭐라고? 어떻게???"

"그게... 그 사회사업실 팀이랑 얘기를 하는데, 그 쪽방촌 사람들이 환자분의 사정을 알고 십시일반 도와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근데 그 쪽방촌 사람들인 그 쪽방촌 방 관리자를 "개똥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맞네. 그 개똥이" 

"네. 그래서 그 개똥이 휴대폰 번호도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 같이 모여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철컥


"여보세요"

찾았다는 기쁨에서였을 까, 누군지 밝히지도 못한 체 첫마디가 나갔다.


"저기.. 혹시.. 개똥이세요??"

아뿔싸...

그럼에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전화기 너머로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네~제가 개똥입니다~근데 누구시죠?"


'유레카~'


그때부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분이 그 쪽방촌 관리자이심을 다시 확인하고, 직접 만나서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뭐 개똥이에 대해 굳이 설명을 하자면, 그분의 본명이 매우 어려워서 그냥 다들 개똥이, 개똥이라고 부르던 게 익숙해져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쪽방촌을 찾아가는 길이 생각보다 찾기가 매우 어려워서, 큰 길가에서 개똥이 님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찾아간 우리 여자 전임의 선생의 시점으로 옮겨본다.


약속시간이 되어 단성사 앞 큰길 앞에서 개똥이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웠고, 전화를 했지만 막상 통화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일용직 노동을 구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노숙자와 허름한 행색을 한 많은 사람들이 큰 길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 결국 뭔가 '개똥이' 스럽게 생긴 사람을 찾아 나지막이 속삭였다..


"혹시... 개똥이??"


몇 번의 시도에 몇몇은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며 째려보기도 하고,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시하기도 했다. 하긴 벌건 대낮에 멀쩡하게 생긴 젊은 처자가 다짜고짜 개똥이냐고 물어보면, 이게 몰래카메라 인가 싶겠지. 하무튼 이게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내 반드시 개똥이를 찾고 말리라는 의지로, 다시 한 명에게 말을 붙이려 할 때...


저 멀리서 포스부터 남다른, 스냅백에 힙합 재킷을 걸친 중년 아재 한 명이 다가왔다. 행색이 초라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뭔가 관리자의 포스가 넘치는... 그래... 저 사람이야!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둘은 환자의 쪽방촌으로 함께 올라가 환자가 그토록 찾던 지갑을 방구석에서 찾았다. 

몇 시간 동안의 추적과 우여곡절이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감사했노라고 인사를 전하며 개똥이 님과 헤어질 때, 진한 사투리로 개똥이가 말했다.


".. 근데 의사 맞습니까? 의사가 이런 일도 합니까?? 허허허"

"그.. 그러게요... 뭐... 어쩌다 보니..."


본인이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한 손에 지갑을 들고 병동으로 복귀한 우리의 전임의 선생, 의기양양하게 환자에게 지갑을 건넸다. 조용히 지갑 안의 23만 원을 확인한 그는, 씩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다치면서 앞니 두 개가 다 없어져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병원 생활 동안에 본 가장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양손에 지갑을 소중히 꼭 쥔 채로, 다음날 환자는 무사히 근처 병원으로 전원 하여 남은 치료를 하게 되었다.


환자를 치료하다 환자의 집을 뒤지는 건 미드"하우스"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의학드라마에서 한 회 에피소드로 나올 법한 일인 것 같은데 참 별일이다. 

그냥 이게 정말 실화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무튼, 개똥이의 전설은 여기까지.



다음은 "소 뿔에 받힌 할머니 이야기" (서울에 소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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