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턴라이프(1)

타로정무의탄생

by 이정무

#나의인턴라이프 #타로정무의탄생


조금 더 뒤로 돌아가서 인턴 때의 삶을 돌이켜보자.


사실 3월 전공의 만큼이나 3월의 인턴은 지옥문의 시작이다. 본과 4학년시절 나름 OB라고 떵떵거리며 선배님소리 듣던 위치에서, 한순간에 병원 바닥 지하실을 맛보게되는 현실이 다가온다.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고사하고 야 인턴, 인턴선생아, 인턴선수~등 호칭도 다양하다.

한 달마다 여러과를 돌아가면서 인수인계를 받고, 병원의 가장 바닥부터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생 때 한 두번 해본 술기들을 하루에 수십개를 하면서 마스터하고, 인턴의 막바지에는 던지기만 해도 혈관 line에 꽃힌다는 신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각 과를 도는 스케쥴은 인턴 초반에 랜덤으로 정하기 때문에, 그 이후 1대1교환이라는 찬스가 있긴 하지만, 이 스케쥴이 향후 자신이 갈 과를 정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본인이 막연하게 지망했던 과를 아무것도 모르는 초반에 잘 못돌면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고, 오히려 상처를 받고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과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진로를 정하는 드물지만 특이한 경우도 있다.

아무튼 각 달의 인턴 점수는 그 과의 수련담당 전공의, 우리같으면 교육치프 혹은 병동 담당 치프가 결정해주게 되는데, 400점 만점을 주려면 사유를 써야하는 만큼 다들 온힘을 다해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턴 때 이야기는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한편 한편 올려두었기에 여기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렇고, 그때 안했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인턴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4학년 국시 후 꽤 많은 시간이 있었다. 나름 인턴 때는 일도 중요하지만 과 회식도 가고, 뭔가 장기자랑?같은 것도 시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나같이 술도 안먹고 노래도 안하는 별종에겐 뭔가 대비책이 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인턴에 들어가기 전 동기형님이 간혹 봐주던 타로카드점이 있었는데, 처음엔 에이~안믿어하다가 막상 카드의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점괘를 보면 혹 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믿게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이런 이유로 학생-인턴때도 형님이 간혹 여러 동기들에게 고민상담을 해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름 재미도 있고,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카드를 사서 외우고 타로점 보는 법을 공부해서 인턴을 시작했다.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겠지 뭐~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3,4월의 인턴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기억이 순삭될 만큼 정신이 없고 잠이 부족하다. 회식이나 장기자랑?같은 건 미리 준비하거나,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할 만큼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5월 정도부턴 적응해서 간혹 선배 레지던트들의 타로점을 봐드리기도 하면서 친한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타로점을 봐주면서 생기는 장점은, 내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하나둘 씩 알게 되는 것이라, 조금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이후에도 그 고민이 잘 해결되면 나중에라도 “그 때 그렇게 봐줬는데 잘 풀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면서 친분도 쌓고, 나도 뭔가 도움이 되었다는데 보람을 느끼곤 했다. 실제로 전공의 때도 이건 계속 이어져서, 병동을 돌때 당직을 설 때면 병동 식구들이 밤마다 고민을 털어놓으며 타로점을 보기도 하고, 한달 병동 스케쥴을 돌고 나면 이 병동 식구들의 고민을 다 알고 있다보니 조금 더 친근하게 지내곤 했던 거 같다. (심지어 타로점 결과를 믿고 갈팡질팡하다가 결혼을 결심한 간호사도 있다^^물론 지금도 행복하게 잘산다)

아무튼 6월쯤 되고 숨을 좀 돌릴만할 때 본원 마취과 턴이 되었다. 그전에 외과계열을 3달을 돌아서 매우 지쳐있었는데 상대적으로 편한 과이기도 했지만, 일단 여러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취과가 수술방 안에만 있어서 소문에 뒤쳐질 것 같지만, 사실상 병원의 모든 이야기가 수술장 로젯 중앙에서 대기하면서 모이는 곳이기에 어디보다 소문이 빠르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귀동냥으로 듣는 병원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친 병원 생활의 활력소이기도 했다.

마취과 일을 하면 커피교대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방에 마취를 하면서 계속 킵을 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어, 잠시 중앙인력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를 해주는 것인데, 그 짧은 시간 커피 한잔하며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날 평소보다 수술도 빨리 정리되고 있어 여유로운 타이밍, 평소보다 빠른 커피교대 타이밍이 돌아왔다. 왠일로 중앙에 가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E 로젯에서 중앙으로 갔다. 뭐지? 오늘 빨리 끝나서 당직인데 다른 데 팔려가는건가 싶었는데, 그곳에 마취과 선배 레지던트, 펠로우 선생님들이 계셨다.


“네가 타로를 좀 본다는 그 인턴이니?”


갑작스런 질문에…당황했지만…예..그렇습니다. 하며 카드덱을 가져왔다.(늘 준비되어있어야한다^^:)

4년차, 펠로우, 교수가 되면 어떤 고민이 있을까 했는데, 사실 사람사는게 다 비슷했던 것 같다. 이사를 가야하는데 세 군데 중 어디가 나을지, 대학원을 가야하는지, 교수가 될지 나가서 개원해서 돈을 버는게 나을지…등등. 다행히도 카드들이 잘 나와서 설명도 해드리고 하다보니, 이후부턴 당직 때 중앙에 종종 불려나가곤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인턴 때 여러 선생님들과 덕분에 친해지기도 하고, 인턴이 끝나고 외과 전공의를 할때도 이런 친분들이 도움이 되곤 했다.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치프가 이야기했지만, 결국 수술장에서는 모든 과가 힘을 합쳐서 해야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하고 가능하면 친하게 지내야 결국 호흡도 잘 맞고 환자가 더 좋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별거 아닌 잔재주이긴 하지만 인턴을 하는 1년간 다양한 과에서 유용하게 잘 쓰고, 전공의가 되어서도 어색한 병동생활 초기에 서로 가까워지게 해준 고마운 재주이기도 하다. 가끔 요즘에도 중요한 결정이 있거나 누군가 고민을 하고 있으면 위로의 차원?에서 봐주기도 하는데, 물론 누가봐도 안좋은 카드가 나오면 … 거짓말을 못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애둘러서 좋게 포장하려고 하기도 한다.(그래도 본인들이 딱봐도 안좋은건 알더라)


돌이켜 보면 인턴은 한달마다 새로운 모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이제 고인물이 되어 새로운 도전이 무서워지긴하는데, 그래도 이때만큼 타의에 의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스펀지 처럼 흡수하고 성장했던 건 참 재밌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몸은 죽어나갔지만…ㅎㅎ)


당직실에서 동기들과 보냈던 여러 잊지 못할 에피소드(보라매 산소통사건을 비롯하여…) 다시하라면 1년차는 못하겠지만^^; 인턴은 한번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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