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집도

이와이

by 이정무

외과 의사의 첫 집도

우리는 이와이라고 보통 이야기한다.

외과 전공의를 하면 1년차 말에 초집도식을 하게되는 데 그 기준이 외과수술의 기본인 충수돌기절제술, 우리가 쉽게 맹장수술이라고 하는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 복강경 수술이기 때문에 예전만큼 배를 열고 닫는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내가 전공의 때는 개복 충수돌기절제술도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로 개복 충수돌기절제술을 하게 되곤했다.

사실 1년차 3월에는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일이 쏟아지고, 콜 하나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초집도를 신경쓰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좀비처럼 수술방에서 2,3조수 정도 자리에서 보이지도 않는 수술들에 들어가 꾸벅꾸벅 졸기 마련이다.


우리 의국에서는 본원-분당-보라매병원-국립암센터 네곳을 순환근무하게되는데, 본원과 암센터에서는 사실상 힘들고, 분당,보라매 병원 순환근무때 보통 초집도를 하게 된다.


나는 3월의 첫시작을 분당에서 맞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른시기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당시 담당교수님께서 해주신 명언이 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난다.


“첫키스와 이와이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온다”

이와의 기회는 늘 ‘아~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라고 생각할때 갑작스럽게 온다는 이야기다. 사실 외과전공의가 수술을 해보는 기회는 정말 흔하지 않기 때문에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보통 3월은 정신없이 지나가니까 당연히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3월 마지막주 였던가, 역시나 정신없이 동의서에 드레싱에 뛰어다니고 있는데 3년차 형,누나가 수술장에서 호출을 한다.


“오늘 아뻬 3개있으니까.
첫번째 거는 내가 할테니 잘 보고 두번째거는 네가 한번 해봐.”


전공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선배운 하나는 기가막히게 좋았던 것 같다. 늘 잘 챙겨주던 선배들을 만나다 보니, 덕분에 좋은 기회를 먼저 가지게 되었다. 다만 인턴때 외과는 국립암센터 위암센터만 돌아봐서, 충수돌기절제술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는것….


3년차 형님(지금은 아주 유명하신 A 병원의 외상외과 교수님이시다)이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첫번째 수술을 끝냈고, 그게 내가 태어나서 본 첫번째 충수돌기절제술이었다. 사실 그당시에는 유튜브같은것도 잘 안되어 있었고, 졸링거 책과 선배들의 인계장에서나 보던 수술이었는데, 직접 보게되닌 감회가 새롭긴 했다.

수술직전, 오랄압빼라고 해서 구술고사 처럼 처음부터 절개선을 어떻게 넣고 어떤 기구를 쓰고 어떤 실을 써서 어떻게 진행할지를 검사받는다. 다행히 방금 본 수술이라 잘 기억하고 있어서, 통과하고 두번째 수술(나에겐 첫집도)을 시작했다.


물론 어시스트는 방금 나에게 수술을 보여준 3년차 형님과 누님, 최고의 어시스트를 모시고 하나하나 수술을 진행했다. 첫집도라 아주 쉬운 케이스를 주셔서 그런지 큰 문제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쳤다. 사실 어시스트가 하란대로 아바타 처럼 하게되는 일반적인 이와이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술이 끝나있었다랄까. (사실 대부분의 이와이는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신 차리고 나니 수술이 끝나있고 시간이 흘러있다)


얼떨떨한 마음도 가실 틈 없이 선배들이 축하해주고, 그 당시 스크럽 간호사가 집도에 사용된 칼날을 주는 세레모니?같은게 있어서 그것도 챙겨주셨다. 정형외과 인턴때는 고정핀 뽑고 나면 그런것을 주기도 한다는데, 색다른 경험이긴 했다.어쨌든 운좋게 첫집도를 하고 나니 내가 뭘 한건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의 4년간은 매일매일이 이런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드니, 설레기도 하는 한편 약간 어깨가 조금더 무거워지긴 한것같다.


지금이야 피가 철철 흐르는 말기간부전환자의 간을 떼었다 붙이기도 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상이지만,아마도 지금의내가 되기까지는, 전공의 전임의를 거쳐 지금까지 오는 길에 수많은 이와이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수술을 배우는 과정이기에 이와이의 길은 아마도 평생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16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새록새록 기억나는 첫집도의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진료교수 생활을 벌써 8년째 하면서, 처음 장기구득때 데려갔던 인턴들, 실습때 가르쳤던 학생들이,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를 거쳐 벌써 나와 같은 진료교수까지 되어서 인사를 하다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생각해보면 인턴~전임의~주니어 교수 정도까지가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가 아녔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흔이 넘고 이제 연배로 치면 주니어는 벗어났고 중견으로 올라가는 시기인데 다시 저때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인공지능연구나 LLM강의등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 넷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외과 의사로서는 이제 어느정도 캐릭터가 완성이 되었으니 다른 분야에서 성장을 도모했던 길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10년전, 20년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처럼, 10년후 2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성장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꺾이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지금보다야 더 나아지겠지.


결국 인생이란 건 결국 이와이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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