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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Jan 28. 2024

오늘...당신의 생명을 가지러 갑니다

 

 생명이 꺼져가기 직전 마지막을 담당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는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의료진부터, 호스피스 의료진도 있고, 요양원에서 가족을 대신에 삶의 마지막까지 보살피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는 달리 예정된 죽음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2013년부터 간이식팀에서 일해왔고, 2017년 하반기부터 2021년 까지 햇수로는 4년을 장기구득업무를 담당해왔다. 우리팀은 전임의 2년차 후반부터 보통 장기구득업무를 담당하고 진료조교수 1년을 거의 몰빵으로 다니고 물려주는 게 전통아닌 전통이었는데, 다른 큰 병원 처럼 중견급 이상 교수들이 전임의를 데리고 돌아가면서 다니는 반면, 혼자서 거의 모든 구득을 담당하다보니(그것도 전공의 선생들을 데리고...) 본의 아니게 그 해에 가장 많은 구득을 담당하곤 했었다. 그것도 1년 정도 이지, 다음해 올라온 전임의 2년차에게 넘겨주고 나면 어느정도 자유가 생기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랫년차들이 사직하거나 없었던 공백기가 있어, 넘겨주지 못하고 꼬박 4년을 다니게 되었다.


뇌사자 선정 문자를 받으면 모두가 머리를 쥐어싸매고 아 ... 밤 또새겠네 괴로워하며 구득팀을 꾸리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당시에는 갈 사람이 나뿐이라, 인턴과 장비를 챙겨서 학회발표가 있으면 발표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학회장으로 앰뷸런스를 보내거나, 우리 집으로 보낸 적도 있고, 지방에 명절에 내려갔다가 다시 바로 올라와서 구득을 간적도 있다. 그래서 난 평소에 들고 다니는 가방에 루뻬(수술용확대경)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타병원에 슬리퍼를 주지 않는 곳도 있어서 수술용 슬리퍼도 가지고 다니곤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뇌사기증자가 매우 귀해서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일단 다른 팀들이 쓰지 않는 장기라 할지라도 직접 "가서"보고 결정하기 원하는 교수님들이 있었기에, 주말이건 명절이건 일단 가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가서 취소되거나, 취소되더라도 다른 기관이 쓰면 울산,부산,포항 같은 지방에서는 결국 서울의 병원에 배정되기 때문에 대신 구득하여 서울역에서 장기를 건내주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후반부에는 코로나까지 겹쳐, 매번 구득때마다 코찌르기를 수십번씩 해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의 여러 과정중에 구득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긴 했다. 매일 바쁜 일상에 햇볕도 보지 못하고 살다가, 대낮에 앰블런스를 타고 서울의 막히는 길을 홍해처럼 가르며,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나름의 낭만아닌 낭만이랄까. 2년차 이후로는 사실 조금씩 즐기면서 다녔던 것 같다.


물론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어렵고 무서운 시기들이 있었다. 우리병원은 보통 3,4번정도 윗년차가 데리고 가고 갑자기 이제 혼자 가야지? 하면서 덜컥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사실 수혜자 수술에 들어갈 인력도 부족한데, 구득팀에 전문의를 두명이나 보내는 건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라, 최대한 빨리 트레이닝을 시켜서 혼자서 다닐 수 있도록 하는게 나름의 이유였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간이식을 배우기 위해 파견온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기에, 아주 하드 트레이닝이 되긴 했다. 혼자서 독립해서 할 때 보통 10개 이내로 learning curve에 도달하기 때문에, 물론 그와중에 매우 어려운 케이스도 있지만, 그 초반 10개까지가 참 살떨리고 어려운 일이긴 하다.


일단 다른 장기구득을 위해 다른병원 의료진,다른 과 선생들이 함께 하기 대문에 내가 혹시 잘못해서 관류를 잘못하거나, 장기를 못쓰게 되거나, 바이탈이 안좋아져서 다른 팀에게데 민폐를 끼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진짜 손이 안좋은 선배가 구득을 갔을 때는 다음 팀이 기다리지 못하고 난입한 적도 있었기에, 다들 긴장속에 수술을 하고, 게다가 다른 병원 간호사들과 손을 맞추기 때문에 첫째도 주의, 둘째도 주의가 필수 였다. 실을 어떻게 부르는지 부터, 기계를 부르는 용어도 수술 전에 맞추고, 쓸 리트랙터도 조율하고, 타과 선생들과 어디까지 누가 먼저할 것인지도 결정하게 된다.


후반기에 다니게 되면 이제 막 구득을 시작한 타과 선생들이 오면 덜덜 긴장한게 보이는데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크게 이야기하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보면, 처음엔 왜저러나 싶다가도, 많이 지나고 나면 그냥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먼저 하시라고~양보도 하고


그런 나에게도 초반 러닝커브까지는 땀을 수술복이 젖을 만큼 긴장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실수 없이 하느라 정신없이 구득을 끝내고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면서 오늘은 뭐가 잘 되었고, 뭐가 안되었고, 다음엔 조심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임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제 어느정도 경험이 쌓여서 이제 좀 마음 편히 구득을 하던 어느날...처음으로 내앞에 있는 것이 장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내 앞가림하기 어려워 보이지 않았었지만, 분명 내앞에 있는 이 사람은 불과 며칠전까지 건강하게 활동하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가 된 "사람"임에 분명했다.


KODA(한국장기기증원)에서 구득을 하기 전 코다코디가 추도사를 읽는다. 그리고 모든 의료진은 그 사이 뇌사기증자를 위한 묵념을 한다.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의 그리움인 OOO님께서 오늘 이 땅에 사랑의 꽃씨를 뿌리고 떠나십니다. 고인이 주신 나눔의 사랑이 더욱 널리 퍼지게 해 주시고, 가시는 길에 평안과 안식이 있으시길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증자의 사망시각은 간 구득을 담당하는 나 또는 심장,폐를 쓸경우 흉부외과의의 대동맥결찰시간(ACC time)으로 결정이 된다. 즉 내가 이 기증자의 대동맥을 클램프로 잡는 그 순간이 이 환자의 사망시간이 된다는 뜻이다. 이 생각이 들고나서 부터 초반 러닝커브이후의 자신감과는 별개로 이 일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누군가의 생명을 끝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후로 몇 케이스는 무거운 마음으로 하다 보니 여러모로 불편한 생각이 들곤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좋게 잘 해석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사랑의장기운동본부 "Remember your love" 장기기증자들을 위한 추모전시회

 그 이후부터 기증자 구득 전 사인과 스토리를 늘 물어보게 된다. 들으면 들을 수록 물론 마음이 더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분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입장에서, 마음으로 한번더 감사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구득을 담당하는 외과의의 마지막 배려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은 정말 구구절절하다. 사실 나의 지금의 삶의 방식,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일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멀쩡히 일하다 퇴근 길에 교통사고로 본인이 일하던 중환자실에 뇌사자가되어 돌아온 간호사부터, 젊은 나이에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뇌사자가 된 아이들까지...이렇게 삶이 허망하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운명앞에서, 내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 내일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이런 생각이 공고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 기증자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분의 의지, 또는 기증을 결정한 가족의 의지를 잘 실현시킬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나의 손으로 이 구득을 무사히 끝내는 것이 망자를 위한 내 최소한의 배려라는 생각으로 임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때부터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현재에 충실해서 이 수술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나름 많은 케이스에도 이른 바 사고?(혈관을 좀 잘못 잘라온다든다...뭐 그런일이 간혹 있긴했었지만)를 한건도 치지 않았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다.


사실 많은 이식센터의 구득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바쁜 시간속에 정신없이 구득을 하고 또 돌아가서 큰 수술을 해야하기에 이렇게 까지 마음을 쓸 여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도 돌이켜보면 그들이 가지고 가는 장기만큼이나 뇌사공여자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나는 당신의 생명을 가져가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새생명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의 이런 뜻이 계속 이어져 가길 희망하고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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