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한가람미술관에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이라는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카라바조의 원화 10점을 포함하여, 총 57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미켈란젤로가 이미 유명한 화가여서 그랬는지 자기가 살았던 곳의 지역명인 ‘카라바조’를 사용했다. 카라바조는 이탈리아 3대 화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어깨를 겨루는 화가인데도 1층에서 열리는 ‘고흐’ 전에 비해 관람객이 적었다.
전시회 오기 전 ‘카라바조 영혼과 피’라는 영화를 보았고, 게다가 오늘 도슨트의 설명까지 같이하니 카라바조의 작품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될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뜬금없이 나타나는 공간과 만났다. 따사로운 듯하면서도 어찌 보면 그 안에서 음침한 대화가 오갈 것 같은 느낌의 불 켜진 창문이 컴컴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 ‘성 마태오의 소명’에 나오는 일부분을 떼어와 그의 그림 맛보기 같았다.
앞으로 전시장에서 극적인 명암 대비 (키아로스쿠로 기법)를 보게 될 것이라는 걸 넌지시 알려주기라도 하듯. 카라바조 작품 특징을 한 장면으로 표현한 전시 기획자의 재치가 돋보였다. 명암 대비가 확실한 창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나도 카라마조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제목은 ‘햇살 꽃핀을 꽂은 여인’이라고 해야 할까?
카라바조의 아버지는 건축가이자 장인이었으나 카라바조가 여섯 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낸 카라바조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13세 때 밀라노로 가서 유명한 화가 밑에서 도제 생활하며 그림을 배웠다. 이후 로마에서 보낸 그의 청년 시절은 가난했고 초상화나 꽃과 과일 등 정물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어쩌면 먹고살기 힘든 환경이 강렬하고 사실적인 화풍을 만들게 했는지 모른다.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는 ‘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앳된 소년이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린 순간을 표현했다. 보통은 뱀에게 손을 물리면 아픈 손가락을 바라보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찬 소년의 표정에 시선을 뺏겨 제목을 보지 않고서는 뱀에게 물렸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제목과 관련 있는 도마뱀과 뱀에게 물린 가운뎃손가락은 어둠 속에 묻어두고 오히려 어둠 속에 있는 꽃병을 밝게 빛나게 표현한 그의 의도가 궁금하였다. 하지만 방안의 모습이 물이 든 유리 꽃병에 비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그려져 그의 정물화 실력을 돋보이게 했다.
카라바조는 모든 그림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극적인 명암 대비를 소년의 표정에 몰입시켜 작품에 오래 머물게 했다.
표정이 살아있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이 뽑는 사람'이었다. 전문 치과의사가 거의 없는 당시의 의료 행위는 이발사가 치과 치료도 했다고 한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마취도 없이 이를 뽑으려니 극심한 고통이 있었을 텐데 카라바조는 이러한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를 뽑아 주는 이는 정면을 응시한 채 환자의 목을 뒤로 젖혀 입안에 집게를 넣고 진중한 표정으로 이를 뽑고 있다. 곤두선 목의 힘줄과 섬세한 근육들이 환자의 긴장감을 말해 주었다. 한 손은 의자 손잡이를 꼭 잡고 한 손은 ‘사람 살려!’하며 손을 들고 외치는 듯하다. 주변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표정에도 긴장이 감돈다.
카라바조는 배경은 검게 단순화시키고 인물들의 표정에 빛을 더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했다. 일상에서의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져 마치 내 이가 뽑혀 나가는 것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카라바조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몬테 추기경이었다.
추기경의 도움으로 귀족 가문과 교회에서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교회의 제단화를 그리며 유명해졌고 ’성 마테오의 소명‘이 완성된 후 로마에서 중요한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종교적 주제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표현으로 많은 종교화를 그렸다. 기존 종교 미술의 전통에서 벗어나 성인을 같은 시민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권위적인 사람에게는 반항하였다.
카라바조는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난폭하고 충동적인 성격은 인생의 걸림돌이 되었다.
다혈질로 술집이나 거리에서 싸움을 자주 하였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도 원만하지 못했다. 잦은 난동과 싸움으로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후원자였던 델 몬테 추기경 덕분에 풀려났다. 가장 큰 걸림돌은 로마에서 벌인 살인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여러 나라로 도망 다니면서 작품을 그렸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카라바조가 자신이 지은 죄를 반성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머리를 자신의 얼굴로 묘사하면서, 다윗이 자신의 죄를 심판하는 것처럼 보이게 작품을 구성하였다. 그래서인지 다윗이 골리앗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고뇌와 연민이 느껴졌다.
고갱, 고흐, 모딜리아니 역시 유명한 화가였지만 카라바조와 성격이 비슷했다. 천재 화가들은 요즘 말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 건 아닐까? 평범하지 않았기에 용솟음치는 충동과 흥분이 명작을 남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성격이 강렬하고 자극적인 명암 대비를 만들어 그림에서 선택과 집중을 끌어낼 수 있었나보다,
바로크 미술의 새 장르를 열었고 ‘카라바조 주의’라는 화풍을 만들어 당대 화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38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
어둠 속에서도 빛이 되는 주인공을 만들어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빛이 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재와 분노조절장애 사이에서 몸부림쳤던 카라바조의 작품은 후세에 ‘빛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로 나에게 깊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