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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기다림도 때론 좋다.

소소한 일상

by 향기나

암막 커튼을 거두니 벌써 햇살이 쨍하다.

내려간 기온 탓인지 그래도 유순해진 햇살이라 얼굴에 닿아도 성가시지 않았다.

커튼을 제치고 다시 누워 핸드폰을 찾아들고 유튜브를 켜니 늘 먼저 보이는 한국경제 TV가 오늘도 얼굴을 쏙 내민다. 틀어놓고 굳은 몸을 스트레칭한다.

첫 멘트에 요약된 장세를 말해 준다. 미국은 어제도 올랐단다. 중요 멘트만 듣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한다.


오래전 누군가 주식하는 법을 알려줘 소심하게 삼성전자 5주를 사놓고 잊고 지냈다. 퇴임 3~4년 전인가 노후 여행자금으로 여윳돈을 주식에 넣으면 여행 다닐 때마다 빼기 쉽겠다고 생각해 주식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방학 중인 1월이었다.

집에 있으니 주식을 들여다볼 시간이 많았다. 하필 삼성전자가 10만 전자 간다고 불붙어 있을 때였다. 귀가 얇은 나는 삼성전자를 많이 사기로 했다. 매수를 눌렀는데 체결이 안 됐다. 다시 또 그만큼의 수량을 입력해 또 매수를 했다. 또 체결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하다 왕 초보인 나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보다.' 하고 그만두었다.


다음 날 들어가 보니 그 횟수만큼의 수량이 다 체결되어 있었다.

'럴수럴수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활황일 때는 접속이 몰려 그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삼성전자는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주식 안 하던 나까지 샀으니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다.

시간이 흘러 최고가였던 나의 평단액은 떨어졌을 때 조금씩 더 사서 낮아졌지만 늘 파란 불이었다. 한번 붉은 눈금을 가져봤지만 주식에 관심 없는 나는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조금 전 삼성전자에도 드디어 붉은색 숫자가 나타났다.

주식에 관심 가질 시간도 없고 투자지식도 없는 내게 단 한 가지 노하우는 '그냥 기다림' 인내심 하나는 최고다.


오르기 전에는 절대 안 판다는 가치 없는 소신 때문에 아직도 내 증권 계좌에는 20여 개의 종목 중 반은 파란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색이 될 때까지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쓸데없고, 무모한 애착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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