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나는 맏며느리였다.
삼 형제 중 큰아들의 아내가 된 나는 원치 않던 맏며느리가 되어버렸다.
분가하는 것은 허락받았지만 고령의 시할머니와 시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결혼전 이미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대신해 퇴근 후 가끔 가서 반찬도 준비하고 청소도 해드렸다.
아기가 태어나자 나는 더 일더미에 쌓였다. 그래도 주말마다 아기를 기다리는 볼품없지만 유일했던 두 분의 낙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명절이나 제사가 되면 맏며느리의 존재감은 더 확실해졌다. 결혼 안 한 시동생들도 오고 작은집 식구들도 몰려들었지만 모두 일손에 보탬이 안 되는 남자들뿐이었다. 결혼이 싫다던 내게 결혼 안 해 주면 죽을 거라고 겁박하며 7년을 쫓아다녔던 큰 죄를 지은 남편만 안절부절못하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 앞에 서면 내게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보증수표를 내밀었던 그의 다감했던 거짓말이 생각나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커졌다. 일에 치여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고난의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맏며느리가 아니다. 모두 하늘나라로 이별여행을 떠나신 후 그 못된 멀미에서 해방되었다.
남은 가족들이 매긴 해방의 구실은 변변치 않았다.
'옛날에야 먹을 게 없었으니 명절을 만든 게야. 전이고 약식이고 준비해 봐야 냉동실 한편에서 옥살이하다 결국 버려지잖아.
자식이 크고 뿔뿔이 산너머 물 너머에 살아 얼굴 한 번 보려고 제사를 만든 건데 이제 매일의 안부는 카톡으로도 충분하잖아.'
옛 시절을 사신 조상님들이 일그러진 명절이라 탓해도 소용없다. 가까이 있는 가족의 건강과 평화가 더 소중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죄송해요. 비록 명절 상차림은 없지만 당신들을 위한 마음차림은 매일이에요. 부족한 딸이자 며느리였던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