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 어떻게 알지?

사도행전 7:17-29

by 아모르랑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약속하신 때를 알려면, 먼저


1. 세상에서 번성과 학대의 때를 허락하심을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 7장 17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다"라고 한다. 이는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400년 동안 종살이 할 것이라고 하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약 75명으로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가족이 400년 만에 200만 명이 넘는 민족으로 번성한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 외 달리 설명할 법이 없다.


하지만 번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의 왕에 오르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학대가 시작된 것 (18절). 바로왕은 이스라엘 번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무거운 노역을 지우고 어린아이들을 죽이려 했다 (19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땅으로 떠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만약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정 베풀었다면 이들이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발판이며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하는 약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셨기에 번성하는 일과 학대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우리 삶에서도 번성과 학대가 동시에 일어날 때가 있다. 요셉처럼 인정받던 번성의 시기가 끝나고 새 왕이 시작되며 학대가 시작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훈련받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훈련은 치사한 훈련이다. 베풀어준 것을 모르고 치사하게 학대하는 사람을 있다면, 오히려 그것을 번성의 지름길로 여기면 된다.



질문) 지금 나는 세상에서 번성/학대 중 어느 것을 누리고 있는가?

저는 지금 세상에서는 학대를 누리나 영적으로는 번성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말이 계속해서 바뀌는 윗 상사, 겉보기에는 번성하는 것 같이 보이는 커리어이지만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죠, 내가 원하는 일도 아니고 주어진 자리에서 순종 외에는 할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퇴직을 하기에는 생계와 직관이 되고, 그래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데 계속해서 떨어지는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관계에 있어서는, 함께 미래를 그리는 남자친구는 비자가 너무나도 황당하게 보류되어 미국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고, 언제 볼지 계획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 여정이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세상적으로는 학대일지라도 영적으로는 큰 축복에 번성임을 고백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기도하고 매일 큐티하는 이 과정이 참된 축복이고 번성임에 감사합니다.





2.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구원자를 주신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한다 (20절).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러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탄식하며 부르짖자 하나님께 그 기도에 응답하신 것인데, 이는 유례에 없을 정도로 빨리 응답하신 것이다. 기도 응답으로 모세가 태어났다. 하지만 모세의 부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석 달만에 물에 떠내려 보내게 되었는데, 바로의 아내가 이 아이를 데려다가 키웠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때에 따라 폭군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하지만 21절에 스데반은 "버려진 후에"라고 표현한다. 우리도 그렇다. 내 부모,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원치 않게 버려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나를 낳아주고 예수 믿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에 힘든 지체, 상사, 친구가 예수님께로 나를 가까이 이끔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의 부족함이나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그들은 부모이다. 그 부족함이 하나님께로 나를 이끌었음을 알아야 한다. 모세는 앞으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해내야 하기에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하는 이들에 능해야 했다 (22절). 하지만, 이런 모세조차 자신의 혀가 둔하여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듯이, 세상적 능력만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



질문)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키워주셔서 내가 하는 말과 능력이 능해진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현재 직장에 버려졌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할 때 나오는 나의 불평불만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올 수 있는 직장이 어디입니까.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할지라도,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고, 최신식 건물과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지만 이렇게 세상적으로 물질적으로 좋은 것보다, 그 속에서 내가 점심 같이 먹을 코워커 단 한 명이 없어 점심시간에 큐티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극대화되는 텅 빔과 외로움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내 안에 허전함을 통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너무나 대비되는 내 상황 속에서 성령님께 시선 돌릴 수 있음이 나의 진정한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23절에 보니 모세는 나이 40이 되자, 그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는 왕자로 살았지만 유모였던 친어머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들으며 민족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모세는 동족을 돌아보게 되었고,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를 압제하던 애굽사람을 쳐 죽였다. 이 한 사람 때문에 역사가 시작되고 모세가 지도자가 되며,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혈기 왕성한 40세의 모세가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겸손함으로 연단된 80세의 모세를 사용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꼭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기득권을 갖고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하는 일마다 권위가 없고 나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했는데 알아주는 자가 없다고 불평하게 된다. 내가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애초에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모세가 애굽사람을 죽인일이 하룻밤 사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펴졌다 (29절). 그리고 그는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고 한다.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자 모세는 두려움에 휩싸여 미디안 땅으로 도주했다. 모세에게 있어서 아직 이때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시기였다. 광야에게 40년을 허락하심으로 다시 훈련받게 하십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이런 여정을 반드시 지나야 합니다.


기도) 아버지, 저는 "번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뛸 만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번성과 고난을 주시는데, 우리는 번성에 교만하여 주님을 떠납니다. 얄팍한 기도에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주님, 모세가 고난과 수치를 통해 지도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만나고 타인의 아픔을 돌볼 마음이 드는 것이 약속하신 때가 임하는 것임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을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때를 알맞게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https://youtu.be/46W2Jur1Q2M?si=J700ctuAnrqHZr7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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