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 성령을 거스르지 않으려면?

사도행전 7:44-53

by 아모르랑

성경을 읽다 보면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끔 이게 하나님이 뜻인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럼 우리는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하나님의 양식대로 내 안의 성전을 잘 지어야 한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행 7:44).


여기서 증거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돌판을 말한다. 십계명이 계록된 돌판은 ‘증거판‘이고 그것을 넣은 곳을 ‘증거궤‘라 한다. 성막의 지성소에 그 ‘증거궤‘가 안치 되었으므로 성막을 증거의 장막이라고 한다. 이 장막은 출애굽기 35-40장에 걸쳐 모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양식대로 만든 것이다.


읽다 보면 이 부분이 사실 재미는 없다. 증거궤는 몇 규빛으로 만들고, 등잔대는 순금으로 만들며 번제단 뜰에 휘장문과 성막의 말뚝은 이렇게, 저렇게 만들라는 말씀이다. 이게 나랑 무슨 상관있으랴 했다. 하지만, 이 수치까지 정확하게 언급하신 이유는 신앙생활에 대충이란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한마디로, 이 양식은 십자가를 잘 지라는 규레이다. 십자가도 대충질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로 즉 No Cross, No Crown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부활만 하고 싶고 십자가는 지기 싫어한다.


출애굽기 40:19,21,23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가 7번이나 나온다.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러번 말씀하시지 않는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는 게 성공한 인생이다.


질문) 신앙생활을 대충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양식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여전히 십자가는 싫고 부활만 좋은가?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신앙생활이란 뭘까.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섬기는게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예배하고, 말씀보며 가까이 지내는 것이 아닐까? 이 정의를 기반으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결코 대충하고 있진 않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있겠지. 차에서 오디오로 QT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보다, 아침에 30분 더 일찍 일어나 더 친밀하게 말씀 묵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예배 직전 헐레벌떡 자리에 앉고 찬양하기보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겠지. 나 하나 먹고 살기에 각박하지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을 찾아가 응원해줄 수 있겠지. "I wish"의 목록이 있지만, 그것도 내가 감사로 또 여유롭게 해낼 수 있을때가 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브런치에 묵상을 공유하고, 또 이직과 이삿집을 알아보며,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하나님안에서 잘 유지하는데 있어서 에너지가 많이 드는게 사실이다. 더하여, "I wish"의 목록보다 "I'm glad"의 태도를 갖기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것에 집중하기 보다, 이미 하고 있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태도말이다.




2. 내 몸이 성전임을 알아야 한다.

성전건축은 다윗이 하고 싶었는데 왜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 건축하셨을까? (46-47절) 전쟁을 통해 피를 흘린 다윗에게는 합당치 않다고 열왕기상과 역대상에서 여러 차례 이유를 설명했다 (관련 구절이 어디더라..)

아무래도 성전건축은 내가 좋자고 하는 거지,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니다. 개미가 우리에게 집을 지어주고 살려고 하면, 정성이야 갸륵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다윗의 마음만 받으셨다. 근데 왜 스데반은 이스라엘을 위해 지은게 아니라, “야곱”의 집을 위하여라고 했을까?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사기꾼인 야곱이 우리와 성전이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하다고 하는 것이 스데반의 시각이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49)


이렇듯,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닿지 않은 땅은 없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셨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성전을 지어놓고 이상하게 섬기고 있다는 것. 스데반은 성전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를 이렇게 구속사로 쫙 꿰고 있었다. 창세기, 출애굽기, 사무엘상, 하까지 구약의 핵심만 콕 집어서 정곡을 찔러 설교한다. 결론은 나는 형편없는데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은 바로 성도들의 몸이다. 우리가 바로 걸어 다니는 살아있는 성전이다.


51절) 스데반이 이 한마디를 하려고 7장 1장-50절까지 설교를 했다. 우리도 예외가 없다. 지옥 뿌리에서 비롯된 교만이 있기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말씀을 들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내 몸의 성전을 잘 지어야 한다.


질문) 내 몸이 성전임을 믿는지? 나는 하나님 위해 집을 짓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나를 위해 집을 짓고 있는게 현실이다. fine line이다. 하지만, 내 몸이 주님의 성전임을 고백하고 믿는데 있어서는 한 점 의심 없이 고백할 수 있다. 아멘! 오늘도 주님이 주신 힘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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