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이라는 의미
8월 16일 — 앞으로 내게 이 날짜는 특별하지만 쓰디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던 날로 기억될 것 같다. 할머니의 기일이라 특별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2달간 가족·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미국으로 귀국한 지 갓 2주가 좀 넘었을 때이기도 하다. 또 새로운 집으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집을 구해 이사를 한 지 9일, 그리고 내 생일을 맞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이었다. 자그마치 2주라는 기간에 생일, 이사, 그리고 죽음이라는 사건들을 한꺼번에 소화해야만 했던 상황을 통해 혹독하게 인생의 쓴 경험을 했다.
몇 달간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계속 뺨을 타고 흘렀다. 처음 한 이틀은, 방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온 몸의 근육 하나하나와 팔다리 마디마디에 힘이 빠져나가게 내버려 뒀다. 글을 쓰는 지금은 11월, 마치 아직도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상황을 기억하는 것 같이 마음 한쪽이 다시 아려오고 촉촉해져 온다.
당시, 나의 위로의 마음을 전달해 가족에게 힘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지금 당장 그냥 할머니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은, 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러 요양 병원에 휠체어를 타시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시며 축 처진 어깨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오른쪽 소매로 훔치시던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의 층 표시기가 1, 2, 3을 지나가자 난 옆에 엘리베이터를 보고 살짝 넋이 나가 있는 채로 서있던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로 눈이 마주치자 눈에 눈물이 금세 차며 엄마를 안고 목놓아 울었다. 왠지 그 모습이 할머니를 보는 마지막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더 그랬다. 그리고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정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많으신 연세로 (향년 94세) 밤에 호흡이 곤란하고 잠을 설치셔서 한국의 가족들이 요양병원 입원을 권유했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당시 코로나로 병원 방문에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병원 입원 날짜를 미루셨고 나의 방문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셨다고.
한국 시간으로 8월 16일 오전 (미국 시간으로는 15일 저녁 7시 즈음이었을까),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짐 정리하는 게 힘들다고 징징대고 위로받으려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에서 난 위로 대신 할머니를 잃었다.
충격에 눈물도 잠시, 머릿속이 새 하얘졌다. 그리고 곧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함과 꿀렁임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덜컥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 시야를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께 내 울음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입을 틀어막으니, 서러움이 2배 3배가 되어 끅끅거렸다. 더 이상 난 할머니의 향기를 한국에서 맡을 수 없었다. 아니, 이제 남은 생에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1년에 한 번씩 가족들을 보러 갈 때마다 그 누구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잠시 달래주던 할머니의 포옹,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앉아서 쉬라고 손짓하던 할머니의 작은 방 한 칸이, 늘 만나면 손을 꼭 잡고 한국에 정착해서 부모님이랑 왜 같이 살지 않냐며 주셨던 장난스러운 할머니의 타박이, 이제는 공기 속에 증기처럼 사라졌다.
이어 엄마가 생각이 났다. 평소에 애정 표현은 서툴지만 그 누구보다도 내게 헌신적이고 여린 마음을 가진 엄마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생각에 마음이 찢어졌다.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살아있는 이 순간까지 언제나 있던 '엄마'라는 존재가 없어졌을 때, 세상에서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때, 그 슬픔의 소용돌이를 과연 엄마가 어떻게 감당할지 나는 상상이 안 갔다.
곧 엄마 곁의 아버지도 걱정이 되었다. 괜찮다고, 아빠는 별 다른 말은 붙이시지 않고 그저 괜찮다고만 하시면서 걱정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사랑하는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고, 아버지 자신의 감정은 절제하며 엄마와 처가댁 식구들을 챙겨야 하는 그 사위의 자리 또한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청춘의 20대인 나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소화하기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혼자 타지에서 말이다. 더욱이 갑작스러운 이사에 난 physically 불안정했고, 심적으로는 소천하시기 일주일 전 나의 탄생(?)을 축하받았는데 정 반대로 예기치 못한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오는 극명한 차이로 인생에 대한 허무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내가 이 순간 살아있고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으며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던 그 당시 나의 절친은, 내가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무기력함과 슬픔에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끊어버리자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나를 붙잡아 주었다. 밤, 낮 그리고 새벽 3시의 전화도 마다하지 않고 수많은 통화로 곁을 지켜주었고, 같이 울어주었고 기도해주었다. 미국에 멀리 있어 멀리 발걸음 하지 못하는 나 대신 장례식에 참가해 할머니와 가족 곁을 지켜주었다. 참 많이 고마웠다. 타국에 있어 만날 수 없는 물리적인 거리가 이 때는 얼마나 감사하던지.
또한, 평소에 내가 의지하고 늘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지만 바빠서 연락이 잠시 뜸했던 언니에게 연락을 하니, 한걸음에 꽃과 무화과를 들고 나와 저녁 시간을 보내주며 위로해주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회사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집으로 위로의 꽃을 배달해주었다. 친한 친구는 좋아하는 음식 먹고 기운 차리라고 저녁을 배달시켜주었고, 대학교 3학년 때 같은 집에서 살던 친구에게 전화해서 전화로 기도를 받았고, 예전만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지만 어머니를 일찍 보낸 친구가 문득 생각이나 오랜만에 연락도 하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해왔고, 함께 기도 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부모님도 감사하게도 많은 조문객의 행렬로 할머니를 좋은 곳에 보내드릴 수 있었다. 혼자 지독하게 이겨낼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소화가 천천히 내 안에서 이루어져 감을 보았고, 오히려 영양분이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8월 16일 이후 외할머니의 소식 이후로 — 이 어떤 운명의 장난인지 — 차례로 친한 친구의 친할머니, 10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고모부의 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는 비고를 들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겠구나, 오히려 나보다 더 고통스럽고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나의 고통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할머니 생각은 내 마음 한편을 시큰하게 한다. 그러나 그 시큰함은 시간이 지나 오히려 건강한 자극이 되어 나중에 천국에서 할머니를 볼 그날을 소망하게 한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고, 그들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하루하루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순간이 더 소중해졌다.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혹은 남고 싶을까에 대한 건설적인 생각에 종종 잠기며 진지하게 유한한 인생의 목적을 다시 재정비하는 계기도 되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젊은 처녀로서 고통스럽지만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픈 전쟁 이야기를 할머니는 항상 유쾌하게 풀어주셨다. 그 이야기보따리 시간에 늘 귀 쫑긋 귀 기울였던 어린 나는 내가 겪고 듣지 못한 역사의 증언에 항상 매료되었었다.
그 꼬마는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패권전쟁, 10.29 참사 (이태원 사건), 인도의 현수교 붕괴 등 세상의 많은 일들을 직 간접적으로 듣고 보고 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나는 내 자녀와 후대에게 어떤 세상을 살게 해주고 싶은지. 그들에게 난 이 세상의 아픔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을지. 정말 너무나도 작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이 세상에 남겨줄 수 있는지. 이 세상 어딘가는 아프고 더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할 건데, 그 안에서 나의 사회인으로서 역할은 과연 무엇일지.
이 질문에 대한 풀이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할머니, 하늘에서 지혜 좀 빌려주실래요?
P.S. 이 글은 2022년 11월 22일에 집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