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상처

에세이 트레이닝

by 룰루메이

‘상처’라는 단어에 나는 항상 나의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한 번의 유산 이후 어렵게 가진 첫 아이를 품은 만삭의 임산부였던, 아직은 어리고 여렸던 내가 거실바닥에 무릎 끓고 앉아있었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35kg 정도 여리한 몸에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누가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외모를 가졌다. 가정적인 남편과 순한 성격의 아들은 긴 세월 예민한 그녀의 성격을 받아주었으리라. 그 옛날, 건물 여러 채를 가진 부잣집의 막내딸로 부족함 없이 자라 온 그녀는 시할머니가 계시는 5형제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지만, 아이가 있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인의 할 도리는 다 했다..라는 당당함이 있었다. 결혼 후 명절이면 하루이틀 전, 선물을 한 아름 이고 지고 나타나 시부모님에게 안기고 정작 명절 당일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시대와는 다르게 맏며느리의 역할이 있었을 그 고리적에 그녀에게 ‘며느리’라는 포지션은 일절 없었다.


내가 시집을 온 후, 명절 때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의 시어머니를 향한 날 선 말들이 내 귀에는 가시 같았다. 내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남자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그래도 호적상 그의 어머니였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에 반박을 할 수도, 맞장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보다 못한 사이.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녀는 내가 임신과 동시에 시작된 고통스러운 입덧으로 전혀 먹지 못해 말라가고 있을 때조차 당신에게 매일 안부전화와 입맛이 예민한 본인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길 바랐고, 가끔은 적적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바랐다. 그 당시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뱃멀미로 심해를 헤매는 느낌이었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시원한 보리차와 평생 입에도 대지 않던 한약 같은 아메리카노뿐이었다. 이를 닦으려고 화장실에만 들어가도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했고. 먹은 것이 없으니 수시로 어지럼증이 도져 혼자서 하는 외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 내게 며느리 노릇을 바라고 시어머니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녀에게 점점 화가 났다.


첫 아이의 임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고 예쁜 생각만 해도 모자란 시기가 아니던가. 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는지 정말 속이 상했다. 그래서 외면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연락도 하지 않고 만남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세 달.. 네 달.. 임신 8개월 차가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입덧이 사그라들면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이 몰려왔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고 싶었고, 말 그대로 먹어 치웠댔다. 그리고 순식간에 15킬로 증량에 성공(?)했다. 만삭이 가까워오며 붓기와 살로 내 팔다리는 미쉐린 타이어를 닮아갔고. 뒤뚱뒤뚱 귀여운 오리가 되어갔다.


그즈음이었다. 결혼하고 두 번째, 임신하고 처음 맞이하는 음력설연휴. 우리는 차로 2-30분 거리에 다 모여 사는 시댁과 친정이라 하루에 모든 일정이 가능한 루트다. 아침에는 시할머니댁에서 시댁 식구들과.. 오후에는 친정에서 나의 가족들과 세배를 나누었다. 출산을 앞둔 설날이라 세뱃돈 두둑이 받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귓가에 들려오는 벨소리부터 스산함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집에 들르라는 시어머니의 전화. 갑작스러운 부름의 이유는 몰랐지만 순간 배뭉침이 느껴졌다. 스트레스였다.


배불뚝이 임산부와 예비아빠는 시할머니댁과 친정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터질듯한 배를 두드리며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분명 위장은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외치고 있는데 우리는 카페에 들를까? 아님 맛있는 디저트를 사러 갈까? 또다시 주전부리 이야기에 속 없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유쾌한 우리의 분위기는 어머님의 전화로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왜 오라고 하시지?? 나 안 가면 안 돼?? 자기만 다녀와…. “

하지만 콕 집어 "오월이엄마도 데리고 와!!"라는 말씀에 남편도 어쩌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계셨고, 아버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하자마자 어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신랑에게 밖에 나가있으라고 하셨고 나는 무서워졌다. 신랑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무슨 말씀인지 같이 듣겠다고 하자 화를 내시면 아들을 집밖으로 몰아내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나도 모르는 실수라도 했던 걸까??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신랑을 안심시켜 내 보냈다. 시어머니는 신랑이 나가자마자 내 발 밑으로 방석을 던지며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입덧이 끝나고 시작된 왕성한 식욕으로 인생 최대몸무게를 경신하고 있었고, 특히나 다리의 붓기가 심한 때라 바닥에 앉아있기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양반다리 모양을 한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어머님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다. 바보처럼..

“안부전화도 없고 만나자고 해도 매번 아프다고 하고 세상에 너만 임신했니??"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설교를 빙자한 잔소리는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점점 다리가 저리고 사타구니가 당겨왔다. 힘들게 버티던 나는 결국 한쪽 다리를 뻗어버렸다. 순간 내 머리 위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니?!!! 어디서 어른 앞에서 그렇게 앉아!!!!

너희 집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셨니???? 부모님이 기본예절도 안 가르쳐주시디??????? “

당황스러웠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출산 경험이 없다지만 이렇게도 공감능력이 없을까. 퉁퉁 부은 다리의 만삭임산부에게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 어이가 없고 서러웠다.


나를 호출한 이유를 세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첫째, 본인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 둘째, 임신기간 동안 며느리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셋째, 나에게 7개월 동안 시어머니 대접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생떼가 아닐 수 없었다. 나의 그 어떤 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어떤 이유가 있던 결론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시어머니와 나의 대화는 늘 그랬듯 “제가 잘못했어요. 잘할게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야 끝이 났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배가 당겨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나는 그녀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해주었고 그제야 나는 감옥 같던 그녀의 집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그녀는 나에게 왜 우느냐고.. 억울하냐고 물었다. '네! 억울해요!!' 하고 말하면 우리의 대화는 1시간 반 전으로 되돌아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아니에요. 자세가 불편했는지 배가 너무 아파서요."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그녀의 눈에 불안함이 스쳤다. 아차! 싶었나 보다. 집에 가겠다고 인사하고 문을 나서자 신랑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현관문 앞에서 종종거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부아가 치밀었다. 왜 저런 인간을 부모라고 다 받아주고 있는지, 나는 언제까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냅다 던졌다

“오빠!! 우리 이혼하자. 아이는 내가 키울게”


그것이 나의 1차 이혼 선언이었다. 하지만 N번차 이혼선언에도 우리는 지금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잘 살고 있다. 나의 이혼선언의 배후엔 늘 시어머니가 있었을 뿐, 우리 부부사이엔 이혼을 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딱히 없었으니까. 5년 전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단절을 선언해 주신 아버님 덕분에 난 자유를 얻었고 매일 하는 안부문자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두 시간짜리 안부전화, 그리고 종종 있었던 그녀와의 티타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신랑은 가끔 아버님과 통화를 한다.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 같았다. 솔직히 그들의 대화나 안부가 궁금하지 않다. 부모자식 간을 내가 끊어 놓을 수는 없지만 내가 엮어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본인이 가진 돈으로 금전적 유세를 떨고, 심리적 보상을 받기 원했으며, “세상에 나 같은 시엄마가 어디 있니?? 넌 진짜 복 받은 거야~”라고 말하던 그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나에게 잔인하고 끔찍했었는지. 잘 가세요. 다시는 보지 말아요..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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