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사실 쓸 말이 아주 많았어요.
복직이라는 게 참 쉽지 않았거든요.(예상하긴 했지만.)
근데 다 사라져 버렸답니다.
한 줄이라도 생각을 적어 남겨둘걸.
그땐 그럴 힘이 없어서 아쉽게도 다 날아갔네요.
하지만 아쉽지만은 않아요.
방금 아쉽다고 했는데...ㅎ
적당히 짧고 길게, 어쩌다 그 힘든 기억들이 다 미화됐는지, 또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남겨 보려 합니다.
2025년, 휴직을 하고 바닥을 기던 자존감은 바보 같은 질문을 반복했었습니다.
'이렇게 쉬어도 되나? 뒤처지면 어떡하지, 이미 못났는데.'
어떤 격려와 칭찬, 관심, 그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던 바보 같은 제가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 여름이었습니다.
더운 탕에 5분만 들어가 있어도 더위를 먹곤 해 목욕탕도 잘 가지 않는 제가 뜨거운 빛 아래에서 팔이 새카맣게 타는 것을 즐기며 천변을 달렸다니,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정말 너무 좋아져서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 약간의 조증까지 가져올 정도였다면 설명이 될까요?
정말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이 파열되기도 했는데 글쎄요, 정말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것을 보니 '여름'이 통째로 미화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벌써 2026년 4월이네요.
3월 말부터 사방에 팝콘처럼 벚꽃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이 지겹다는 말을 지독하게 지루한 표정으로 내뱉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남편이 저를 끌고 참 많은 곳을 가주었습니다.
(본인도 슬슬 쳇바퀴 같은 삶이 지겹다 하기도 하지만)
매해 보는 벚꽃은 지겨울 틈 없이 아름답더라고요.
'정말 하루하루 이렇게 지겨워도 될까 싶은데, 벚꽃은 너무 예쁘다. 봄에 꽃이 피길 기다렸다가 여름에는 바다에 빠지고, 가을에는 산을 타며 겨울 눈을 맞기 위해 살고 있나 봐.'
지치도록 꽃구경을 하고 돌아온 날 밤, 자기 전 나눈 대화의 한 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벚꽃을 보고 왔어요.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 눈가를 뜨겁게 했던 바쁜 일과 실수, 좌절, 불안 따위가 하나씩 날아갔습니다.
꽃 하나로 바쁜 3월의 기억이 모두 미화되어 파란 봄 하늘만 머리에 남았네요.
참 기적 같기도 하고, 아직 살만하다 싶어서 스스로 다행이라 달래 봅니다.
꽃이 진 자리에 또 힘든 일이 가득 쌓이겠죠.
그럼 또 그 계절의 벚꽃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