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연락은 안 해도 돼
"잘 지내니? 카톡에서 너 생일을 알려준다야"
그렇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대학 선배의 연락이다. 대외 활동을 함께 하며 친해졌고, 졸업 후에는 선배가 결혼한 뒤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와의 카톡창은 아주 깨끗했다.
"생일이라 몇 년 만에 이렇게 연락도 하네. 생일 축하하고, 근데 좋은 소식은 없니?"
30대 중반의 미혼인 내게 묻는 '좋은 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나는 알고 있다.
"좋은 소식이라... 글쎄. 만나는 사람은 있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다. 좋은 소식 물었는데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긍정적인 답을 줘서"
역시나 그가 묻는 좋은 소식이란 결국 결혼할 사람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대학 시절, 그는 키가 작고 촌스러웠다. 4년 내내 교정기를 끼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따듯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고 대외 활동 팀에서도 가장 친했다. 나는 그에게 속 얘기를 많이 나누었고, 그는 그것을 호감이라고 오해했다. 그래서 우린 멀어졌고, 본격적으로 멀어지게 된 계기도 공교롭게 몇 년 전 내 생일이었다.
20대의 내 생일, 그는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생일 선물을 보냈다.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난 일에 적응을 못해 눈치를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선물은 내가 퇴근한 후에 도착했다. 어르신 퀵을 통해 꽤 큰 선물 상자와 꽃다발을 보냈으니, 매일 실수 연발이던 내 입장에서는 다소 민망한 상황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나는 카페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다시 카페로 향했으며, 사장님과 선배 직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선물을 들고 나왔다. 며칠 뒤 나는 사장님께 그만 나와도 된다는 퇴사 통보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로 난 그에게 부담을 갖게 됐고 우린 서서히 멀어졌다. 그런 그가 내 생일에 또 연락을 한 것이다.
"광고 회사에서의 생활은 재밌고? 나도 마케팅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응, 재밌게 잘 지내고 있어. 근데 오빠가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나?"
"나 완전 광고 꿈나무였잖아! 몰랐어? 서운하다야."
사실 그가 마케팅에 관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일찍, 나보다 훨씬 많이 광고를 하고 싶어 했고 공모전에도 종종 나갔다. 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 이름을 빌려준 적도 있다. 물론 떨어졌다. 그의 제안서도 그처럼 촌스러웠다.
"나 나름 관련 회사에서 인턴까지 했었는데. 네가 지금 다니는 회사도 취업하고 싶어했지."
"그랬구나, 전혀 몰랐네."
모른척하는 것은 내 나름의 복수였다. 당신이 20대에 그렇게 꿈꾸던 일을 옆에서 봤지만 반짝이던 재능도, 특별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었다는 듯이 모른척 하는것, 그렇게 당신은 평범하고 특출나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 중에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소심한 나의 복수였다.
"오랜만에 연락하니 좋네. 또 연락하고 지내자."
이 카톡에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내 소심한 복수는 마무리되었다. 대학 시절 즐겁게 함께 지내던 좋은 인연들의 안부 인사도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럽고 싫어지는 것은 내 못난 자격지심인걸까.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다. 이러한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싫은 걸 억지로 웃으며 참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30대 중반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2021년에 저장했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