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된 노처녀

by 룰루람라

2021년에 오랜만에 연락한 선배의 안부물음에도 긁혔던 노처녀는

2022년에 결혼해 2023년에 아기까지 낳으며 초스피드로 아줌마가 되었다.


사람이라는 게 재밌는 게, 노처녀 시절에는 그토록 화목한 가정을 가진 아줌마가 되고 싶었는데

막상 아줌마가 되고나니 노처녀 시절이 그리워진다.


퇴근길에 주문하면 집에 도착할 때에 맞춰 딱 도착해있던 배달 음식,

배달 음식과 함께 넷플릭스를 보며 먹었던 맥주 한캔,

샤워 후 속옷만 입고 창틀에 기대 바라보았던 밤하늘,

주말 아침이면 여행하는 기분으로 마실 나갔던 맥도날드 그리고 맥모닝,

오피스텔 로비에서 친구 커플과 함께 낄낄대며 마셨던 노상맥주,

언제 어디든 제안만하면 ok를 외치고 떠날 수 있었던 해외 여행.


어쩌면 내 인생 호시절은 나 홀로 6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그 때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니, 실은 아이가 찡찡대서 하루종일 안아줘 땀없는 나도 땀이 줄줄 나는 하루면 그 때를 떠올렸다.

아니, 실은 나 홀로 등원준비를 하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던 오늘 아침에도 그 때를 떠올렸다.

아니, 실은 남편이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면 그 때를 떠올렸다.


남편과는 2021년 겨울에 만났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10시면 가게들의 영업 시간이 종료되던 때였다. 약속 시간에 늦은 내가 차를 샀는데도, 정류장에 데려다주지도 않고 자신이 타야하는 지하철역으로 쏙 들어가길래 내가 마음에 안드는가보다 싶었다. 나는 남편이 마음에 들었었다. 공통점도 많았고, 외모도 내가 좋아하는 무쌍에 슬림한 몸이었다.


다음 날, 마음에 들었다면 으레 점심시간 이전에 연락이 왔을건데 연락이 안왔다. '소개팅 후 여자가 먼저 연락해도 되나요?' 와 같은 질문을 몇 십 번쯤 해본 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30대 중반정도 되면 안다. 남자의 연락이 없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30대 남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로맨틱 드라마 주인공정도 되는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쳤다고 생각하고, 친한 언니 오빠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신나게 공친 이야기를 하며 평생 노처녀로 지내야할 것 같다고 푸념을 하며 집에 가던 길, 남편에게 연락이 왔고 그 후 우리는 몇 번의 데이트 후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된 후 결혼까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연을 만나면 이렇게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인가 싶을만큼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여기저기 사주를 보는 곳마다 우리는 궁합이 좋은 부부라 그랬고, 부모님들끼리도 잘맞았다. 그렇게 결혼 준비를 하면서 혼인 신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혼인 신고 후 임신을 했다. 주위에 난임 부부가 많아 빠르게 준비한건데 한 번에 임신이 되어 결국 배가 불러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임신 초기라 배는 티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전전날까지 프로젝트를 끝내고 입덧 약 하루치를 한번에 먹은 내 얼굴에 티가 났다. 임신 사실을 모르던 친구도 내 얼굴을 보고 혹시...? 라고 생각했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노처녀 푸념글을 적은지 2년만에 나는 꿈에 그리던 아줌마가 되었다. 성실하고 애정가득한 남편과 어떤 때는 녹아내리는 애교로, 또 어떤 때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찡얼거림으로 나를 들었다놨다하는 26개월 딸과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출장을 가 나 홀로 아이 등원준비를 하며 출근준비를 하고, 걷기 싫다는 아이를 들쳐메고 어린이집에 갔다. 곧 추석이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까지 깔끔하게 묶은 아이와 달리, 내 머리는 드라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제각기 뻗쳐있었고 피곤함에 퉁퉁 부은 얼굴엔 예의상 겨우 립 하나 발라진 상태였다.


오늘도 나는 노처녀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내가 가장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겐 되고싶은 어떤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힘든 아침을 이겨내본다.

작가의 이전글갑작스러운 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