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미션, 결혼
우여곡절이 많았던 연애였다.
힘든 연애였지만, 그래서 우리 사이는 더 끈끈하다고 믿었다.
함께 안고 있던 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느꼈을 때, 이미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결혼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함께 당일치기 캠핑 여행을 갔던 날이었다. 캠핑하는 내내 이야기할 타이밍을 보다가 결국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무척 힘든 상황인 거 알아. 하지만 나도 확답이 필요해.
지금 당장 결혼하자는 건 아니야. 하지만 2년 안에 결혼하겠다고 약속해 줘."
나름대로 부담 주지 않으려고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언급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그는 요리조리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놨던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던 그곳에서 나는 한번 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젠 피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부담스럽다는 속마음을 이야기했고,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에게 "빈말이라도 2년 뒤에 하자고 하면 안 되는 거냐"며 엉엉 울었다. 그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되면 내게 더 미안할 것 같다고 한번 더 헤어짐을 확정 지었다.
그렇게 만나는 내내 힘들었던 연애는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한 나는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누구에게라도 이 마음을 이야기해야 살 것 같았다.
"나 결국 헤어졌어."
"헤어졌다고? 헐 인생 X됐네."
응?? 내가 잘못 본 건가 다시 읽어봤다.
친구도 아차 싶었는지 얼른 한 줄을 추가했다.
"아니 아니. 그냥... 이제 어쩌냐는 의미야."
위로를 바라고 말을 건 친구에게 역으로 녹다운 펀치를 맞은 나는 멍하니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았다. 나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친구는 당황스러웠는지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글을 남겼지만, 더 이상 읽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사회가 던지는 미션을 반 발자국 빨리 클리어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은 수시 전형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한 달 빨리 합격했고, 취업 역시 마지막 한 학기를 앞두고 빠르게 성공했다.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부모님께는 알아서 척척 해내는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 놈의 결혼만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내가 주어진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이 친구는 나의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의 "인생 X됐네"는 말은 내게 결혼이라는 미션에 실패했다는 사회적 주홍글씨를 이마 위에 찍는 것과 같은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며칠 뒤, 이 친구는 내게 이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말을 거칠게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실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사과는 받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지만, 이 사건 이전처럼 돈독하진 않다.
이 사건이 벌써 4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 결혼에 집착했을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프고 힘들었다. 서른 살에 하고 싶었던 결혼을 5년이나 지난 35살까지 못한 것도 속상한데, 힘들게 이어갔던 연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치고 힘들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삼십 대 중반에 다시 맨땅에서 연애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인생이 X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인연이 아니었던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그거야 말로 인생 막차로 가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때 헤어졌던 남자친구는 딱 1년 뒤 연락이 왔다. 이제 지쳐있던 마음이 회복되었고, 결혼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이기적인 연락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를 거절함으로써 이별로 생겼던 마음의 상처와 자존심은 일부 치유되었다.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상황 속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친구가 했던 칼처럼 날카롭고 잔인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인연이 아닌 사람이 지나간 것이니 그러려니 하라고. 지금 당장은 웃음이 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나처럼 브런치에 이 이야기를 훌훌 털며 쓰는 날이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