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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림 Jan 30. 2020

박쥐는 왜 코로나 바이러스에 안 걸릴까?

신종 코로나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발생하며 전 세계에 확진 환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뱀, 박쥐, 사향고양이 등의 야생동물이 지목되는데요. 특히 박쥐는 메르스뿐 아니라 에볼라, 사스 등 인류에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를 옮긴 주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쥐는 포유류에서 가장 많은 60~200개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동물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박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기지만 자신은 전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이러스에 대처할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쥐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스, 에볼라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기는 박쥐 자신은 전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 사진 CSIRO

박쥐가 전파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들


1930년대 박쥐가 사람으로 전염병을 전파한 최초의 보고는 흡혈 박쥐가 옮긴 광견병이었습니다. 박쥐 자신은 감염되지 않은 채 5~8개월 생존했습니다. 지금도 박쥐가 서식하는 지역에서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있으며, 참고로 여우, 너구리와 같은 야생동물들도 체내에 광견병 바이러스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2003년 홍콩에서 발생한 사스는 박쥐가 인류에 가장 치명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아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전 세계적으로 총 8400여 명을 감염시키고 10%에 달하는 사망자를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표면 단백질이 돌출돼 있는 모습이 태양의 코로나(corona)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정기적으로 인체에 침투해 기침, 인후통, 콧물, 재채기 및 발열과 같은 감기 증상을 일으킵니다. 메르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입니다. 메르스도 박쥐에게서 낙타,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옮겨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근 인도에서는 니파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니파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치사율 75%에 달하는 니파 바이러스는 박쥐의 배설물이나 타액으로 오염된 과일로 인해 전파되거나, 이로 인해 감염된 돼지로부터 옮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본 니파(Nipah) 바이러스 - Australian Animal Health Laboratory Livestock Industries CSIRO

박쥐만의 슈퍼 면역 시스템


박쥐는 여러 바이러스에 대해 숙주 또는 저장고로 활용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박쥐만의 특수한 생물학적 특성 때문입니다. 호주의 연방 과학 산업 연구기구의 면역학자 미셸 베이커에 따르면, 박쥐의 면역계는 인간만큼 강하거나 다양하지 않지만 독특한 방식의 면역체계를 갖습니다.   


항 바이러스제로 자주 언급되는 ‘인터페론’은 바이러스 감염 시 체내에 발현되는 특수 단백질입니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 감염 후 첫 번째 방어적인 역할로, 감염된 세포와 인접한 세포 사이에서 바이러스 복제를 제한합니다.


포유동물은 다중 인터페론을 보유하고 있는데, 인간의 경우 알파 유전자 13개를 포함해 17개의 I 타입의 인터페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듀크NUS 의과대학에서 병원체를 연구하는 펑 지우에 따르면, 박쥐는 이에 반해 단 10개의 인터페론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그중 3개만이 항 염증성을 갖고 있는 알파 유전자입니다. 박쥐가 이러한 적은 수의 인터페론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독특한 능력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인터페론은 감염 뒤 생성되는 단백질입니다. 그러나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은 박쥐의 조직과 세포에서 지속적으로 인터페론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쥐의 경우 감염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종에서 인터페론 반응의 지속적인 활성화는 면역 반응의 과다 활성화로 이어져 조직 손상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박쥐가 일정한 수준의 인터페론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은 현재로서는 완벽히 입증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쥐에서 인터페론의 독특한 발현 패턴을 밝히는 것은 바이러스 연구의 새로운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속적인 비행이 가능한 유일한 포유동물


박쥐가 질병에 걸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장거리를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정기적으로 매우 먼 거리를 날며 밤에는 최대 350km를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포트 콜린스 과학센터의 생물과학자 토마스 오셔는 비행에 따른 신진대사율과 체온의 상승이 박쥐 면역계의 활성화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박쥐는 비행 중에 체온이 40℃ 이상 올라갑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 몸에 열이 나듯이, 발열 반응은 일종의 면역 반응입니다.


또 박쥐가 지속적으로 비행하는 동안 대사율이 증가해 세포 DNA를 손상시킬 수 있는 반응성 산소 라디칼이 생성되는데요. 미국 애크런대 크리스티 장 교수에 따르면, 박쥐는 이러한 DNA 복구를 위해 항 바이러스 유전자가 선택되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박쥐의 비행 능력은 더욱 강력한 면역 반응을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


박멸할 것인가, 존중할 것인가

사스 원인으로 지목된 중국 동굴 박쥐 - 광동 응용생물자원연구소

그렇다면 박쥐가 생태계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쥐는 매우 먼 거리를 비행하며 배설물을 퍼뜨립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열대 지방의 자연 재조림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독일 에를랑겐 뉘른베르크대 라이프니츠 야생 생물 연구센터 연구팀은 인위적으로 박쥐를 배치해 광범위한 열대 우림 식물의 종자를 주변으로 확산시켜 자연 산림 재생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박쥐의 또 다른 역할은 병해충 지킴이입니다. 몇몇 박쥐 종은 엄청난 양의 다양한 곤충을 먹이고 삼기 때문에 해충 방제에 효과적입니다. 박쥐로 인해 모기나 여타 해충에 의한 질병 예방 및 작물 생산성 향상과 살충제 사용 감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박쥐에게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지구 상에 공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봐야 할 뿐, 박멸이나 퇴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의 미생물학자 스테판 파블로비치에 따르면, “박쥐에 대한 퇴치 운동이 특정 박쥐 종에 의한 바이러스 운송 비율을 실제로 증가시킨 증거도 있다”며, “박쥐에 대한 연구로 인간을 위한 새로운 바이러스 치료제의 길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및 참고
https://www.ncbi.nlm.nih.gov/pubmed/16195424
https://www.ncbi.nlm.nih.gov/pubmed/28377531
http://www.buffalo.edu/news/releases/2018/07/019.html
https://www.zmescience.com/science/bats-perfect-hosts-viruses-5354/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08/04/080428124235.htm  


이종림 객원기자 lumen002@naver.com


2018.09.11

기사 원문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2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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