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교회에서 오는 차 안에서 아이와 나눈 대화 중...
나: 지호야, 오늘 엄마 성가대랑 플루트 부는 거 들었어?
지호 : 응.
나: 그런데 실수를 한번 해서 좀 아쉬워.
지호: 사람들은 잘 몰라.
나: 같이 한 성가대 분들은 아시지.
지호: 뭐 어때.
나: 퍼펙트하지 못했으니까 아쉽다고.
지호: 왜 퍼펙트해야 돼? 퍼펙트하지 않아도 돼.
나: 음악은 퍼펙트해야 아름다우니까.
지호: 안 그런 것도 아름답거든~
나: 바이올린 조율 안 맞아서 징징거리는 게 듣기 좋아? 너 오카리나 불 때 다른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면? 안 그렇잖아.
지호: 아냐, 그래도 괜찮아.
나: 물론 그렇게 일부러 틀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지호: 알아. 예술이라고.
나: 맞아. 그것도 예술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완벽한 소리를 좋아해.
지호: 아냐, 완벽하지 않아도 다 아름다워.
언제부터일까? 완벽주의의 노예가 되어 갔다. 완벽한 문장, 완벽한 기사, 완벽한 일처라, 완벽한 성과... 특히 음악이란 늘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다. 음악을 배우면서 수학처럼 명쾌한 대위법을 펼치는 바흐를 제일 좋아했다. 삶이 불완전하고 불명확할수록 완벽에의 동경은 더욱 커져갔다. 세계적인 연주가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음악을 재현해내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곤 했다.
하지만 삶이 어디 그러한가. 삶은 무언가 하나 부족하고, 어리바리해야 제맛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모를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맞닥뜨리고 그로 인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상상하지도 못한 기회를 만날 때... 비로소 삶이란 살아볼 만한 재미가 있다는 성찰의 헛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준비하거나 예측하지 않았던 수많은 경험은 지금에 와서 나를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한 어린 딸이 어떤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노력하는 과정은 모두 아름답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잠깐의 틈을 내어주지 않는 내가 어린 눈에도 너무 인색해 보였을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향해 있는 팍팍한 시대에 아이의 순수함은 또 어떻게 채색되어 갈지 걱정스러우면서도 기대되는 이유다.
If you were perfect, you couldn't be a human. 언젠가 무척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예건이에게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이고, 일상은 불완전하기에 늘 선물처럼 다가온다. 알면서도, 마음과 머리로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조차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