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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멘 Jul 16. 2024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갑자기
회사에서 잘렸다. 1

One day

2012년 1월 11일은 내 직장 생활 가운데 세 번째로 해고(정확하게는 감원이다)된 날이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당시 해고된 상황이 매우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던 영주권도 얻었으며, 집도 장만하고 첫째 딸아이도 낳았다. 아내도 원하던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서 수입도 늘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내가 1991년 유학을 떠나며 내심 꿈꿔왔던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고 느껴지는 시기였다. 그런데 1월 11일의 해고는 그 모든 걸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그날도 출근해서 내 데스크에 앉아 맥북을 켤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평화로웠다. 다만 가슴 한편에 약간의 서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전날 퇴근 시에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고, 그로 인해 해고가 진행될 거라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동료들과 함께 만약 그렇다면 대상자는 누구일까 하며 잘려 나갈 누군가를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상에 포함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에서 꽤 중요한 인력이라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Hey Lumen, please come to see me at my office." 전화 목소리는 디자인 디렉터 크리스였다. 순간 나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호흡을 최대한 가다듬으며 그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뉴요커 특유의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보스를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I'm not good at this stuff but I know what I have to do. Lumen, you are a good worker but we have to let you go… I'm sorry." 이후에도 추가적인 코멘트가 있었으나 내가 뭐라고 대응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고, 벌게져만 가는 얼굴의 온도를 느끼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가슴속에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제어할 수 없었고, 나만 잘렸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고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제어할 수 없는 감정과 온갖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시큐리티 가드가 무빙박스를 들고 내 자리로 오기 전에 빨리 맥북에 저장된 업무 자료들을 외장 저장매체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폴리오는 디자이너가 다음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자료이다.


그 당시 직장 근처에 전자기기 매장이 위치해 있어서 바로 뛰어나가 외장하드 드라이브를 구매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내가 퇴근 시간까지 자리에서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대개는 해고 통보를 받은 후에 바로 짐을 싸서 근무지에서 퇴출시킨다. 나는 미친 듯이 업무 자료를 외장하드에 복사하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무서운 얼굴로 자료 복사에 집중하고 있으니 소식을 들은 주위 동료들도 위로의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자료 복사를 완료하고 친하게 지냈던 매니저 러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러셀은 해고 기준은 성과가 아니라 입사 순서였으며 내가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위로했다.(하지만 전혀 위로가 안되었다)


밖을 나와 보니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에 바람마저 부는 매서운 뉴욕의 겨울 날씨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가 과연 다시 맨해튼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억지로 떨쳐내면서 뉴저지에 있는 집을 가기 위해 여느 때와 같이 42가 Port Authority 터미널로 걸어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뉴저지 집으로 향하면서,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칠흑 같은 뉴욕 허드슨 강물을 응시하다가 문득 30분 후면 집에 도착한다는 사실에 다시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해고된 일을 어떻게 아내에게 얘기할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아내는 둘째 아이 임신 6개월 차였다.


매일 출근길의 시작점 - New York Port Authority 2층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매일 퇴근길의 시작점 - Port Authority Terminal Bus Station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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