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한가지.사랑
아침 9시,
나는 평소처럼 은행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셔터가 반쯤 올라간 채 삐걱대는 소리를 냈고, 차가운 유리문에는 내 얼굴이 어설프게 비쳤다.
화장기 없는 얼굴. 정해진 유니폼. 그리고 속에 숨긴 1억 원어치의 떨림.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내 심장은, 창구 번호표 기계보다 더 빠르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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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와 나는 동갑이다.
처음 만났을 땐, 그가 세 살쯤 더 어려 보였다.
말투 때문일까, 아니면 눈매 때문이었을까.
그는 말할 때마다 고개를 약간 기울였고, 웃을 때는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됐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그냥 결혼할까?"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다 말고, 무심한 척 장바구니 위에 손을 얹으며.
나는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 농담이길 바랐던 것 같다.
정말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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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에어컨 수리기사였다.
땡볕이든, 눈 오는 날이든 현장을 다녔다.
작은 트럭 뒤칸엔 항상 드라이버와 덕트가 엉켜 있었고, 그의 손엔 늘 작업 장갑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은행원이었다.
시민의 돈을 다루는, 그럴듯한 직업.
하지만 월급은 언제나 빠듯했고, 명절이 지나면 신용카드 잔고부터 확인해야 하는 사람.
가진 건 없지만,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을 이야기했고, 미래를 그려보았고,
그러다 금방 현실 앞에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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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엔 '구멍'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구멍을 알고 있었고, 메울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고객이 납입한 수표가 회계 시스템에 반영되기 전,
잠시지만 자금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공백의 시간’이 존재했다.
아무도 모르게 손댈 수 있는 시간.
‘1억만. 딱 1억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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