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도에는 아직 빈칸이 있습니다.

AI 시대, 리더가 가장 먼저 다시 그려야 할 세 가지

by 경영 컨설턴트 Tim

요즘 경영자들을 만나면 비슷한 고민을 듣습니다. "AI를 써야 한다는 건 아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질문이 틀리지 않았나?'


AI를 어디에 쓸지를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지금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설계가 AI 시대에도 유효한가?


저는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조직도는 제대로 그려져 있는가. 리더의 뇌는 보호받고 있는가. 시간은 장악되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흔들리고 있다면, AI 도입은 해결책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혼란이 됩니다.


조직도에 사람만 채우려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전통적인 HR의 관점은 단순했습니다. 어떤 역할이 필요한가,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을 앉힐 것인가. 채용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보고, 빈칸을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빈칸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리서처, 디자이너, 영업 보조, 콘텐츠 작성자. 이 역할들의 상당 부분을 AI가 처리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신입사원은 어떤 역할로 입사해야 하는가.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입사 첫날부터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AI를 도구로만 보면 이 말이 낯설게 들립니다. 하지만 AI를 협업 파트너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일부 선진적인 조직에서는 AI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윌리엄', '소피아'처럼. 이것이 단순한 유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AI는 기능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의 대상이 생기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지시하고, 조율하고, 책임지는 법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100인 이하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에게 저는 종종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마케팅 실무 자리는 소피아에게 맡기고, 김대리는 소피아를 관리하는 포지션으로 올리시죠." 이 말에 처음엔 웃다가, 곧 진지하게 생각하는 대표들을 많이 봤습니다. 조직도의 빈칸에 반드시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것이 지금 우리 조직의 가장 오래된 제약일 수 있습니다.


리더의 번아웃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경영 리스크입니다

최근 조사에서 MZ세대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임원 승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수치를 세대 특성으로 읽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책임은 커지는데 뇌가 이미 한계라는 신호라고 읽습니다.


현대의 리더들은 끊임없이 방해받습니다. 슬랙 알림, 카카오 메시지, 수시 보고, 갑작스러운 회의입니다. 이 자극들이 뇌를 이른바 '팝콘 브레인' 상태로 만듭니다. 잠깐의 자극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뇌는,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전략적 판단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집중이 한 번 끊기면 다시 돌아오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 설계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환경 경량화'라고 부릅니다. 불필요한 인지 부하를 줄여서 리더가 써야 할 뇌 용량을 진짜 중요한 판단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지가 아닙니다. 전략입니다. 리더의 뇌가 과부하 상태에 있으면, 그 조직의 의사결정 품질은 떨어집니다. 단순하고 자명한 논리입니다.


팀장급 이상의 리더가 번아웃을 호소할 때, 주변은 흔히 "좀 쉬어야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릅니다. 이 사람의 뇌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우리 조직에 있는지입니다. 없다면, 그것이 먼저 해결해야 할 경영 과제입니다.


할 일을 적지 말고, 시간을 선언해야 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은 시간에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To-Do 리스트는 착각을 줍니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리스트에서 쉬운 것부터 처리합니다.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부터입니다. 결국 진짜 중요한 일은 늘 미뤄집니다.


타임 박싱(Time Boxing)은 다른 접근입니다. 할 일을 적는 게 아니라, 시간을 할당하는 방식입니다. "9시부터 10시까지 이 일에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완벽주의를 포기하는 결단입니다. 시간이 되면 완성되지 않아도 멈추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 훈련이 쌓이면 속도가 생기고, 속도가 생기면 실행력이 달라집니다.


저는 여기에 '동굴 작업'이라는 개념을 더합니다. 곰이 마늘만 먹고 동굴에서 사람이 되는 이야기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모든 디지털 자극을 차단하고 오직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방식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동굴에서 나올 때는 반드시 결과물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초안이든, 메모든, 의사결정이든입니다. 빈손으로 나오면 동굴은 그냥 도피가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나만 동굴에 있으면 협업이 깨집니다. 내 집중 시간을 팀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유 캘린더에 '집중 블록'을 표시하고, 그 외 시간에 협업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몰입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오늘 해야 할 한 가지

이론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 당장 캘린더를 여십시오.


2시간짜리 블록을 하나 잡으십시오. 그 시간의 이름을 '동굴 작업'이라고 써도 좋고, AI 파트너의 이름을 붙여도 좋습니다. 소피아와 함께하는 기획 시간이라고 해도 됩니다. 스마트폰은 끕니다.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려는 욕심도 끕니다. 그 시간이 끝났을 때, 초안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조직도를 다시 그리고, 리더의 뇌를 보호하고, 시간을 장악하는 것. 이 세 가지는 AI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과제가 아닙니다. 언제나 경영의 본질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도태의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빠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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