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AI에 놀라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늦었다"

- AI 네이티브에 관한 "도발적" 정의

by ViVERs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ChatGPT에 처음 문장을 던졌을 때, Midjourney가 뱉어낸 이미지를 보았을 때, Runway가 텍스트 한 줄로 영상을 만들어냈을 때.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히 기억하는가? 놀라움.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진짜 이런 것도 된다고?"

그 한마디가 Ai 시대의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 당신은 아직도 그 '놀라움'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나는 약 20년 동안 영상 미디어 기술 분야에서 일해왔다. 테이프 시절부터 파일 베이스로, SD에서 HD로, HD에서 4K로, 리니어 편집에서 논리니어로. 이 업계에 있으면 기술의 지각변동이 몸에 밴다. 피부로 느낀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다 — 새 코덱이 나올 때마다, 심지어 연탄맥이라고 불리우는 MacPro가 처음 편집실에 등장했을때, 워크플로우가 바뀌었고, 워크플로우가 바뀌면서 야근의 질이 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 전환은 늘 추상이 아니라 촉감이었다.


사실 이 패턴에는 이름이 있다. 모든 범용 기술이 거치는 숙명 같은 것. 1880년대, 전기가 공장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것 봐, 밤에도 일할 수 있어!"라고 경탄했다. 30년이 지나자 아무도 전기에 놀라지 않았다. 대신 "왜 이 구역은 아직 전기가 안 들어와?"라고 따졌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에 "편지가 1초 만에 도착한다니!"라고 신기해하던 사람들이, 2005년에는 "3초 넘게 로딩되면 뒤로 가기를 누른다"가 되었다.

놀라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리고 그 유통기한이 만료되는 순간, 당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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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AI의 놀라움도 유통기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 내가 AI 앞에서 처음으로 멈칫했다.

2023년 초, GPT-4가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영상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AI에게 던져봤다. 반쯤은 장난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물이 — 쓸 만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새벽 3시에 커피 네 잔 마시고 짜낸 초안보다 구조가 나았다. 그 순간 느낀 건 놀라움이 아니었다. 묘한 불쾌함이었다.


(1년 뒤에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 웃길까. 아마 그때쯤이면 불쾌함조차 사치였다고 느낄 것이다.)

카메라와 컴퓨터 시스템 앞에서 20년을 버틴 사람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그 자존심이 흔들리는 순간, 두 가지 길이 갈린다. 하나는 "그래봤자 AI는 아직 멀었어"라고 방어막을 치는 길. 다른 하나는 — 불쾌함의 정체를 파고드는 길.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게 내가 AI 네이티브로 건너간 다리였다.

'AI 네이티브'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 'AI를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처음부터.

비유를 하나 들겠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떠올려보라.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렀다. 그들이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유가 컴퓨터를 잘 다뤄서인가? 아니다. 그들은 컴퓨터가 있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란 세대다. 검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당연히 검색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존재 자체가 공기처럼 전제된 세대.


AI 네이티브도 마찬가지다.
AI를 잘 다룬다가 아니라, AI가 할 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사고방식. 그것이 AI 네이티브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 발 더. AI 네이티브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다. 그들은 AI에게 당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것도 된다고?" — 이건 AI 트랜스포머의 언어다. AI라는 새로운 도구에 감탄하고, 신기해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단계. 이 단계의 사람들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와, 대단하다'고 반응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누구나 거치는 길이다.


그런데 AI 네이티브의 언어는 다르다. "이런 것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1년 전의 나라면 이 구분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AI가 뱉어낸 결과물에 감탄하느라 바빴다. 그 감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거기 머물렀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쓸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틀렸을까? 아니다. 그때는 그게 맞았다. 다만 지금까지 그 자리에 서 있으면 — 그건 틀린 거다.


택시를 타면 가끔 기사님과 AI 얘기를 한다. 한번은 이런 말을 들었다. "요즘 내비가 AI라면서요? 근데 아직도 이면도로를 모르더라고." 나는 그 말에 웃으면서 동시에 전율을 느꼈다. 이 분은 AI에 놀라지 않는다. AI에게 '당연히 이면도로를 알아야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론적 프레임 같은 건 모르지만, 감각적으로는 이미 AI 네이티브에 가까운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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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택시에서 내려 사무실에 돌아오면 풍경이 달라진다. 내가 만나는 IT나 영상미디어 업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AI 데모 영상을 보며 "와, 세상 좋아졌다"고 감탄한다. 기술적으로는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이, 태도에서는 오히려 뒤처져 있다. 놀라움의 유통기한을 갱신하고 또 갱신하면서, 정작 당위의 영역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두 업계만의 풍경이 아니다. 마케터가 AI 카피라이팅 툴에 "와, 카피를 이렇게 빨리 뽑아주네?"라고 감탄하고 있을 때, 다른 마케터는 "왜 브랜드 톤앤매너를 한 번에 못 맞추지? 3개월치 레퍼런스를 줬잖아"라고 따지고 있다. 개발자가 클로드 코드에 "코드 자동완성, 신기하네"라고 놀라고 있을 때, 다른 개발자는 "왜 전체 아키텍처를 컨텍스트 기반으로 한 번에 설계 못 해?"라고 요구하고 있다. 같은 도구, 같은 기술 — 태도만 다르다. 그리고 그 태도의 차이가, 6개월 후의 생산성 격차로 나타난다.


스마트폰 초기를 떠올려보면 더 선명해진다. 2009년,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사람들은 "전화기로 인터넷이 된다고?"라고 놀랐다. 그로부터 3년. 사람들은 "왜 이 앱은 오프라인에서 안 돼?"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놀라움이 당위로 바뀌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전환을 완료한 사람들이 모바일 네이티브가 되었고, 완료하지 못한 사람들은 — 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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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AI 전환의 타이머는 훨씬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3년이 아니라 1년, 아니 6개월.

나는 3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AI를 업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회의록 요약, 이메일 초안, 기획서 뼈대. "와, 시간 아낀다"의 단계. 그런데 어느 순간 —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변화란 대체로 그렇다 — 나의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영상 편집을 AI가 자동으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 이건 AI 트랜스포머의 질문이다.

"왜 아직도 이 워크플로우에 사람 손이 세 번이나 들어가지? AI가 한 번에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 — 이건 AI 네이티브의 질문이다.


차이가 느껴지는가?

전자는 AI를 '도움을 주는 도구'로 본다. 후자는 AI를 '시스템의 기본 인프라'로 본다. 전자는 AI가 해주면 감사하다. 후자는 AI가 못 하면 불만이다. 이 불만, 이 당위의 감각 — 봤다, 나는, 그 순간을. — 이것이 전환점이다.


3개월 뒤.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내 회사의 워크플로우는 근본적으로 재설계되었다. AI가 보조하는 구조가 아니라, AI가 기본이고 사람이 검수하는 구조. 10대 가량의 고성능 NAS 서버는 MCP와 OpenClaw를 연동해 더이상 이메일 알람이 아니라 텔레그램과 자연어로 모든서버의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보고하고 운영한다. DIT 특성상 수백 TB이상의 클라이언트 RAW 영상을 저장 관리한다. 수백TB의 NAS 서버에 이제 사실상의 큰 머리에 똑똑한 뇌가 생겼다. 프로젝트 당 하나의 Ai 에이전트 할당되어 모든 데이터의 대한 이벤트 로그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보안 모니터링과 파일서버 최적화를 실시한다. 쉽게 말하면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에게 24시간 쉬지도 않고 똑똑한 전담 직원을 붙여 준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Mac mini 5대가 각각의 OpenClaw 에이전트를 품고 기동안 내가 지루하게 해왔던 국내,해외 관련업계의 뉴스와 자료 리서치를 모두 24시간 동안 자동으로 처리한다. 왠만한 레거시 중소 마케팅 회사의 20~30명의 퍼포먼스와 맞먹는다. 정말이다. 정말 심각하게 마케팅 회사 운영도 고민중이다.

클로드 코드와 Remotion 조합이면 내가 원하는 주제와 키워드를 반영한 모션그래픽 10분짜리 영상이 일레븐랩스의 찰진 보이스 오버를 곁들여 딸깍 한번이면 30분 만에 나온다.


영상 기획안은 AI가 초안을 잡고 사람이 방향을 틀었다. 컬러 그레이딩의 기본값은 AI가 제안하고, 컬러리스트가 감성의 마지막 노드 파라미터 값에 마지막 5%를 얹었다. 자막은 AI가 생성하고, 에디터가 숨겨진 뉘앙스를 — 이를테면 화자의 미세한 말끝 흐림 같은 것을 — 잡아냈다. 정확한 비율로 말하기는 어렵다. 프로젝트마다 다르고 날마다 경계가 움직인다. 다만 확실한 건, 사람이 하는 일의 양은 줄었는데 밀도는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 이게 중요하다 — 줄어든 그 사람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었다. 더 창의적이었고, 더 전략적이었고, 솔직히 더 재미있었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AI 네이티브적 태도로 당위를 요구하는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AI 제품 자체의 기준선이 올라간다. 사용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요구하면, 제품은 그 기대에 맞춰 진화한다. 진화한 제품은 다시 사용자의 기대 수준을 끌어올린다. 당위가 기술을 끌고, 기술이 다시 당위를 높이는 — 이 나선형 상승이 지금 AI 산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솔직히 인정할 부분은 분명 있다. 동의한다. AI 네이티브로의 전환이 모두에게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나도 여전히 두렵다. 20년 동안 쌓아온 기술적 감각 — DIT로서, 기술감독으로서, 후반작업자로서 체득한 그 미세한 감각들이 AI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점점 자주 온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AI 네이티브가 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장인의 수공예, 대면 상담에서의 미세한 감정 읽기, 30년 경력 셰프의 간 맞추기. 모든 것이 AI 네이티브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또 다른 종류의 맹목이 된다.

하지만 당신이 지식 노동자라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기술과 사업의 교차점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법이다.


어릴 적 읽은 만화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강해지고 싶으면, 강한 척하는 것부터 시작해." 유치하지만 묘하게 맞는 말이다. AI 네이티브가 되고 싶으면, AI 네이티브처럼 생각하는 척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것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척. 그러다 보면 정말로 그렇게 사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유튜브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AI가 내 직업을 뺏는 게 아니라, AI를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내 직업을 뺏는 거다." 2024년 기준 누적 좋아요 14.7만 개.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2024년 보고서도 같은 맥락의 수치를 내놓았다 — 2030년까지 전 세계 직무의 약 30%가 AI에 의해 자동화 가능하되, AI 활용 기반의 신규 직무가 동시에 창출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 프레이밍에 반만 동의한다. 'AI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위협이 되는 건 트랜스포머 시대의 이야기다. 네이티브 시대에는 AI를 안 쓰는 사람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마치 지금 인터넷을 안 쓰는 직장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진짜 분기점은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다. '어떤 태도로 쓰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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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하나 남기겠다.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AI — ChatGPT든, Claude든, Gemini든 — 에게 마지막으로 "와, 이것도 되네?"라고 놀란 게 언제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이것도 안 돼?"라고 짜증을 낸 게 언제인가?

만약 후자가 더 최근이라면, 당신은 이미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전자가 더 최근이라면 — 서두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알아야 한다.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전환의속도는 너무 빠르다. 심지어 그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그 경험을 정리하고 공유 할 만큼의 여유도 없다. 그리고 특정한 임계점이 오면 당신의 손끝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곧 떨리기 시작할 것이다.


두려워해도 된다. 두려움은 전환의 연료니까. 다만, 두려움에 멈추면 그건 연료가 아니라 독이 된다.

AI 네이티브가 된다는 건, 결국 이런 거다. AI가 있는 세상을 놀라운 세상이 아니라 당연한 세상으로 재설정하는 것. 그리고 그 당연함 위에서, 비로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

"AI가 모든 답을 줄 수 있는 세상에서, 물어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의 끝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없다. 경과 보고만 있을 뿐이다. 나도 당신도 아직 그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