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와 테라피스트의 시선
아나운서의 말_
대발이 아버지부터 김 부장까지,
드라마 속 시대의 아버지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중략)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아버지와 나 中(Part-1) -N.EX.T-
https://youtu.be/16bLe-aYsSE?si=JEIp9OBtDBoX__HP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에게 여운이 많이 남는 듯하다.
드라마의 마지막에는 제목이 모두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대기업에 다녔던’, ‘서울에 집이 있었던’ ‘전직 김 부장’이 되어버렸으니 탄탄한 엘리트 코스에서 준비 없이 밀려난 50대 대한민국 가장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졌다. 이런 드라마의 전개를 보며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을 훔쳤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걸 보니 드라마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과 현실을 잘 그려냈다 할 것이다.
가족을 그린 드라마에는 전통적으로 시대의 아버지 상이 담겨있다.
최고 시청률 64.9% , 평균 시청률 59.6%의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기록(김 부장 최고시청률이 7.6%이다)을 갖고 있는 1991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현재의 기준으로 상상하기 힘든 꼰대 아버지상이 담겼다.
얼마 전 작고한 이순재 배우가 열연했던 ‘대발이 아버지’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막말을 입에 담고 살았고 가족이 남녀로 나뉘어 겸상을 하지 않았으며 부인(김혜자)을 몸종 부리듯 하는 모습에 당시 여성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해서 그렇지 90년대 초반만 해도 집안의 절대 권력자이자 그저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상은 흔하디 흔했고 대발이 아버지와 대비되는 사돈(김세윤 분)의 페미니스트적 기질이 오히려 신선해 보였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발이 아버지를 시청자들이 그리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호의적이었는데 가족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 그리고 그 책임감을 온몸으로 코믹하게 보여줬던 이순재 배우의 열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가장은 억세 보여도 집안의 무게를 혼자 견디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무게를 혼자 견뎌야 하는 어찌 보면 불합리한 가족 구조의 최전선에 선 가장이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권위’ 외에는 배우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이순재 배우는 인물 분석을 통해 실감 나게 그려냈던 것이다.
절대적인 권위자.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몰랐던 우리 아버지상은 시대가 흐르며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뭐길래>가 나왔던 1990년대 초는 사회전체가 활발했던 시절이었다. 80년대 3저 호황으로 경제에 활력이 넘쳤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우리가 경제 발전의 주역이라는 아버지들의 자부심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버지상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격히 변화해 간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절대적인 권위를 갖던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고개 숙인 아버지.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매일 아침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 모습조차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들은 평소처럼 양복을 입고 관악산을 오르며 퇴근시간까지 먹먹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시기의 드라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들의 모습을 그리며 '가장의 권위'회복을 위한 노력들이 많이 그려졌지만 또한 가장의 권위가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KBS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SBS <피아노> MBC <여우와 솜사탕>등)
김 부장은 드라마 속에서 2001년에 ACT라는 통신사에 입사하는 설정이다. 2001년은 우리나라가 IMF외채를 모두 상환한 해였다.(2001년 8월 23일) 대량해고와 수많은 부도 사태를 극복하고 다시 사회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던 무렵이었고 다시 대규모 신입사원 공채가 이루어지던 시절 베이비붐 세대의 김 부장이 입사한다. 그리고 휴가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25년의 시간을 영업맨으로 일하고 임원 승진을 노리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대한민국 상위 1%의 자부심을 갖는 아버지가 된다.
아마 김 부장이 휴일도 없이 회사에 매달려 살고 임원 승진에 목매다는 모습, 생활이 회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불편했던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아니 불편을 떠나 이해 자체가 안 되는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부하 직원들은 반차내고 부동산 투자하러 다니는데!)
김 부장은 IMF로 아버지 세대가 몰락하는 모습과 바로 1~2년 선배들이 취업조차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취업에 매달려야 했던 첫 세대였다. 연봉 1억 8천에 강남은 아니지만 약 10억대 아파트를 소유하고(옥수동 추정) 자식 교육 잘 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냈으며 그 시절 아빠들의 로망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언제 그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못난 가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안쓰러움이 지질함을 압도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굳이 정의하자면 무너지는 아버지 세대를 보며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첫 세대지만 결국 전통적 사회의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세대, X세대라는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청춘을 보냈지만 세월이 지나 MZ세대에겐 꼰대 취급을 받는, 조금은 서글픈 자아를 가진, 위로가 필요한 세대가 아닐까…….
사족 1 : ‘그 자리보다 그 인생에 찬사를 보냅니다’,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이제는 제네시스에 고급차의 이미지를 내줬지만 김 부장이 애착을 갖고 있던 그랜저의 광고 카피는 늘 ‘그랜저 = 성공한 인생’의 공식을 따랐다.
사족 2 : 김 부장 드라마 속에서 시청자가 은근슬쩍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대상은 아마 임대수입 월 3,000의건물주 친구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다ㅠㅠ)
테라피스트의 말_
대발이 아버지에서 김 부장까지,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
아나운서님의 글을 읽으며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 아버지의 얼굴도 떠오르고, 얼마 전까지 열렬히 시청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 rl>의 김 부장의 여러 장면들도 함께 겹쳐 보였습니다.
드라마 초반의 김부장은 가부장적 아버지의 전형처럼 등장해요. 가족을 위해 일하고, 가족을 위해 버티며, 자신이 이 집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 인물, 김부장 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김부장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김부장이 김낙수에게, 그리고 김낙수가 다시 김부장에게 말을 거는 두 자아의 내면 대화였습니다. 왜 그렇게 임원이 되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낙수는 답합니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고. 그 자존심 때문에 회사에서 겪은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끝내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두 자아 속의 김부장은 김낙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 행복해라, 낙수야.”
그 짧은 대화는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건넸어야 할 말이 아닐까요. 애쓰고 버텨온 나 자신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며, 직급과 직책이 아닌 진정한 나로서도 행복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말 말입니다.
저는 전미화 작가의 그림책 〈달려라, 오토바이〉를 떠올려봅니다.
표지 속 아빠는 멋진 헤어스타일에 선글라스를 쓰고, 어깨를 한껏 치켜세운 채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역할 이전에 ‘나를 잃지 않으려는 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먼저 보입니다.
낡은 오토바이에 아이 셋을 태우고 일터로 향하는 엄마 아빠는 삶이 버겁고 지칠 법도 한데 표정만큼은 밝습니다. 오늘을 버티기 위해 달리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끝내 웃음을 내려놓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입니다.
제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수출선 외항선 선장이셨던 저희 아버지는 그림책 속 낡은 오토바이 대신, 김부장의 강남 사무실 대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큰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셨습니다.
〈달려라, 오토바이〉 속 아빠도 아주 먼 곳으로 일을 떠납니다. 오토바이를 깨끗이 닦아 두고 막내의 생일에 놀이동산에 가자고 약속한 채 말이지요. 그리고 비와 눈물 속에서 가족은 아빠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달립니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더 이상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햇빛 찬란한 날도, 비바람에 압도되던 날도 그림책에서는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저 역시 아버지의 휴가가 끝날 즈음이면 더 이상 마냥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엔 언제 오느냐고, 묻고 또 묻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같은 대답을 하셨어요. 조금만 더 지나면 함께 살게 될 거라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을 하면, 손자가 태어나면 말이지요.
하지만 그 약속들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요.
왜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는지, 왜 멈출 수 없는지, 왜 이 삶을 선택했는지 말입니다. 김부장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김낙수에게 “왜 그렇게까지 버텼느냐”고 묻자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라고 답했던 것처럼, 저의아버지에게도 그만둘 수 없게 했던 무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가족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 그래서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삶이 아니었을까요. 가족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었던 삶의 한복판에서 사실은 가족에게지탱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김 부장이 깨닫게 되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지탱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대발이 아버지에서 김 부장까지, 그리고 그림책 〈달려라, 오토바이〉 속 아빠와 바다 위를 달리던 저의 아버지까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사람으로 말이죠.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말없이 삶을 달려온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이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게 된 우리들에게 이 글이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족 1 : 그 시절 ‘그랜저 = 성공한 인생’의 공식은 이제제네시스가 조용히 이어받은 듯합니다. 현대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 잡은 제네시스는 성공의 이미지를 새로 쓰는 데 꽤 성공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제네시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외제차들이 즐비한 시대이긴 하지만요.
사족 2 : 드라마를 보며 저 역시 임대수입 월 3,000의 건물주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돈으로 돈을 키우는 일에 매몰된 삶은 살지 말아야지 혼자 다짐도 해봅니다. 그래도 연금복권 한 번쯤은 당첨되고 싶다는 소원까지 완전히 접지는 못했다면, 이쯤에서 제 마음은 다 드러난 셈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