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숨값은 얼마입니까

아나운서와 테라피스트의 시선

by 여울빛

아나운서의 시선_

당신의 목숨값은 얼마입니까


“그(고 장덕준씨)가 열심히 일한다는 메모가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해!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어!? 말이 안 되지!!!” “그들(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시급제 노동자들이다, 성과가 아니라 시간급을 받는다”

한겨레21 12월21일 기사 발췌-

미국인인 쿠팡 김범석 의장의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한국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대처 명령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2020년 10월12일 야간 근무 뒤 심근경색으로 안타깝게 숨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장덕준(당시 27살)씨.

당시 장씨는 1년 4개월 동안 주 5~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고강도 노동을 이어갔고 마지막 야간 근무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성과급이 아닌 시간제 급여를 받는 그가 열심히 일할 리 없다며 김 의장이 CCTV를 통해 찾아내라 한 것은 "물 마시기, 잡담과서성거림, 짐 없이 걷기"등이었다. 고 장덕준씨의 목숨값을 깎기 위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은 지시는 그동안 쿠팡에서 터진 수많은 산재사고의 이유를 말해주고있다.


고백컨대 처음 쿠팡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나는 같은 값이면 굳이 쿠팡을 이용했다. 당시 드물게 배송 기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쿠팡의 정책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수많은 배송 기사들이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즉 ‘사장님’으로 분류돼 보호받지 못하는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는 것이 사회 문제화되던 시절. 쿠팡의 정규직 채용 선언은 드디어 우리에게도 노동 친화적 기업이 탄생하는가 라는 기대 속에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쿠팡을 응원했었다.


하지만 구글의 창립 이념이 ‘(돈을 벌기 위해) 악마가 되지 말자’였다는 믿기지 않는 과거처럼 쿠팡의 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얼마 전 제주에서는 새벽 1차 배송을 마친 뒤 다시 물건을 싣기 위해 물류센터로 돌아가던 쿠팡 택배기사 고 오승용씨가 운전 중 통신주를 들이받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 씨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 뒤 단 하루를 쉬고 새벽 배송에 투입됐는데 어린 두 자녀를 남긴 그의 마지막 길이 되어버렸다. 하루 11시간 30분, 주 6일의 야간노동, 심지어 다른 배달 기사의 ID를 이용해 8일 연속 야간 근무를 하기도 했던 그에게 아버지의 장례 이후 주어진 휴식일은 단 하루 였다.

<평소 고 오승용씨의 근무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화>

이 사고 소식이 알려지고 사회 문제화가 되자 쿠팡 대리점의 대응은 고 오승용씨의 음주운전 의혹 제기와 함께 고인의 가족을 도와 목소리를 낸 민주노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물론 고인의 가족은 반발했고 경찰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음주운전 정황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 아직 쿠팡 본사나 대리점의 사과는 없다. (본사가 아닌 한 대리점이 언론사에 보도 자료까지 뿌리는 기민한 대처는 언론사 20년 생활에 길들여진 나에게도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타인, 특히 을의 죽음에 가해지는 비인간적인 가혹한 대처에는 모두 ‘비용’이라는 이유가 붙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그 노동자가 누군가의 비용으로 계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나의 죽음 대비 ‘비용’은 얼마일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질문 속 오늘도 살아있음을 안도 해야 하는 미생들에게 그나마 제대로 된 위로는 목숨값을 깎으려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은 기업인들의 처벌일 텐데,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텐데 경험상 제대로 된 처벌을 본적이 없어 씁쓸함을 더한다.


사족1. 이 글을 쓰려 자료를 찾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쿠팡의 일명 납치 광고로 쿠팡 웹사이트로 끌려 들어갔다. 혹시 고 오승용씨의 가족들도 납치 광고에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서늘해진다.


사족2. 몇 년 전 쓰다가 놓았던 글을 붙인다. 수많은 김용균의 죽음 뒤에도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2019년 11월21일 경향신문 1면을 채웠던 1,200명의 이름은 2018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년 9개월간 사망한 노동자들이었다.


매일 3명꼴로 아침에 출근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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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하고 간략하게 쓰인 사망원인은 대부분 떨어짐, 깔림, 끼임, 물체에 맞음이었는데 그분들이 일한 곳이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 만큼 높거나, 깔리면 죽을 정도의 거대한 구조물 밑이거나, 끼이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현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익명으로 처리된 1,200명 중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실명으로 기록되었는데 그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다. 석탄 운송용 설비의 이상을 점검구를 통해 점검하다 컨베이어에 끼는 끔찍한 사고로 숨졌는데 2인 1조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현장에서 혼자 점검을 하다 숨졌고, 숨진 지 4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회사가 비용을 아끼려 혼자 작업을 하게 했던 고 김용균씨의 월급은 165만원이었는데 회사가 또 다른 한 명의 비용을 아끼려던 165만원이 고 김용균씨의 목숨 가치가 되어버렸다.

-전지적시점-


테라피스트의 시선_

그 숫자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이번엔 제가 고백컨대, 날씨가 궂은 날이면 저는 배달 음식은 시키지 않습니다.

택배 물류처럼 이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일들을 개인이 즉각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주문만큼은 조금 늦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 혹시라도 미끄러운 길 위에서 배달 하시다 다치지는 않을지, 이미 지친 몸으로 또 한 번 속도를 내고 있지는 않을지 괜히 마음이 쓰이기도 합니다.


아나운서님의 글을 읽다 문득, “쿠팡이 대한민국 사람들을 망쳤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이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 기업을 향한 분노라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리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한 탄식처럼 들렸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조금 늦어지는 일이 불편함을 넘어 손해처럼 느껴져 하루 더 기다리는 일이 참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건...

특히 아나운서님의 글에서 제 마음에 오래 머문 말은 분노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경제학자 김재수는 《99%를 위한 경제학》에서 사람은 갑질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면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권력은 사람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고, 한때 성실하고 겸손했던 이들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덜 등장하는 사회, 아니 그런 단어가 필요 없는 사회를 기다려 봅니다.

그림책 〈어둠을 치우는 사람들〉은 청소부의 독백으로 쓰인 이야기입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땀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다 눈처럼 순식간에 얼어버려도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책 속의 청소부는 말합니다. 몸을 다칠 때도 있지만, 몸보다 먼저 마음이 다칠 때도 있고, 그 순간이 때로는 더 고통스럽다고 담담하게 고백하죠. 그림책 속 청소부들은 사람들이 잠든 사이,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에 움직입니다. 스스로를 누군가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것,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을 어둠 속에서 가져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그림책을 보며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몸은 쉬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마음은 멈춰야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듯, 일과 휴식도 함께 할 때 비로소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타인의 마음을 한 번 더 염려할 줄 아는 사회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며 삶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선명하고 때로는 끔찍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라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사족 1. 아나운서님이 유가족들이 원치 않는 광고에 끌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하셨을 때, 저는 얼마 전 쿠팡 회원 탈퇴인 이른바 ‘탈팡’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결제는 한 번의 터치로 생각할 틈도 없이 이루어지는데, 탈퇴는 미로처럼 설계되어 어찌나 힘이들던지요. (이런 방식을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부른다더군요.)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납치 광고와 사용자를 붙잡아 두는 탈퇴 미로는 겉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듯 합니다.


기술이 만들어 낸 잔인함에 대하여...


사족 2. ‘매일 3명꼴로 아침에 출근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라는 아나운서님의 글을 읽으며 그 숫자 안에 한 사람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수출선 외항 선장이셨던 아버지는 해외를 오가며 항해하시던 중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고, 끝내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회사와 이후의 과정은 사실 순조로웠어요. 절차는 안내받은 대로 진행되었고, 보상과 처리 역시 크게 막히는 일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 순조로움이 저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결국 ‘정리 가능한 항목’으로 환산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바다 위에서 보냈을 수많은 시간과 그의 노동, 그리고 삶은 서류 속 몇 개의 숫자로 정리되었고, 그 과정 어디에도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 매끄러움이 제 마음을 오래도록 서늘하게 만들었고, ‘목숨값’이라는 말은 우리가 무엇에, 그리고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을

유가족분들께 이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앞으로 눈물이 흐르는 날이 아마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울고 싶은 말들과 함께

왈칵 쏟아내셔도 괜찮습니다.


울지 못한 울음이 몸 안에 가득 차

다른 이들과 섞일 수 없는 눈물이 범람하게 되면

어느 날 낯선 이에게 낯선 순간,

모두 쏟아져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펑펑 울어도 된다는 용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물이 될 때까지...


슬픔의 성을 한 번쯤 쌓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믿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1인칭 작가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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