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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Apr 26. 2020

투 핫 투 핸들: 섹스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요즘 시간이 비면 핫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본다. 드디어 최근 회차까지 다 따라잡았다! 지선우가 똑똑하게 모든 걸 다 조져버리는 드라마일 줄 알았는데 그건 내 기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니지만 이전보다 그리 열광적으로 드라마를 기다리게 되지는 않는 기분.


그러던 찰나에 영업을 당한 것입니다.



트위터 원문을 봤는지, 이걸 캡처한 커뮤니티 글을 봤는지 기억은 안 났지만 설정 자체가 어이없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어... 섹스 못 하는 게 그렇게 죽을 일이야...?' 싶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일요일이 왔고, 집안일과 함께 할 사이버 친구가 필요했던 나는 넷플릭스를 틀어 투핫을 틀어보기로 하는데...


존잼!!!!


결국 점심 먹고 저녁 먹기 전까지 꼬박 영상 틀어놓고 정주행을 완료했다. 한 편당 40분 내외여서 그렇게 부담스러운 시청 시간도 아니고, 8화 완결이어서 더더욱 가볍게 봤다. <짝>이나 <하트 시그널>처럼 한 공간에 사람을 몰아넣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애정관계를 조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적 교감은 일절 금지다. 총상금은 10만 달러, 스킨십 금지 규정을 어길 때마다 상금에서 차감되는 구조.

하여 몸의 대화가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매력적인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못해서 갑갑해하거나 상금 조까라 하면서 규칙을 위반하는 장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래로는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포인트들.


1. 섹슈얼한 긴장감

사람들이 첫 만남에 플러팅 몇 번 날리더니 키스를 했다. 우와. 개쩐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못 나올 리얼리티 예능이겠지?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유교걸인가? 어쨌든 별세계 사람들 보는 재미는 있었다.


출연진들이 다들 섹스에 인생을 갈아 넣은 양 굴었다. 키스 한 번에 삼천 달러의 상금이 날아가는 데도 "너는 삼천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어"라신다. 그냥 키스를 해도 좋은 판에 금기에 도전하는 의미까지 덧붙으니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나 샤워하러 갈 거야. 같이 씻을래?"
"지금 네 한계점에 도달한 기분이야?"


아니 언니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사람 긴장하게...


서로 끌리고 있음을 아는데도 마음처럼 한 번에 베드인 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답답함이 이들의 언변을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원래 연애하기 전 썸 탈 때가 제일 재미있고 간질간질하다지. 매력적인 남녀를 한데 모아 두고 강제로 썸밖에 못 타도록 놔두니 긴장감이 없을 리가 없다.



2. 인격적 성장... 이게 되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섹스 못 하게 괴롭히기'가 아니라 '진실한 관계를 쌓아가는 방법 찾기'다. 놀랍게도 심오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그냥 핫한 사람들 모아다가 괴롭히는 재미로 리얼리티 쇼를 만든 줄 알았지.


결국 스킨십을 할 수 없으니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대화다. 그냥 순간적인 매력에 이끌려 하룻밤을 보내고 빠르게 소모되는 관계에서, 사람들은 첫인상 그 너머의 성격과 사람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좀 더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깊은 대화도 나눈다!


특히 해리와 프란체스카.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키스의 스타트를 끊으며 '규칙 조까셈 나는 나만의 스킨십을 한다'라는 커플이었다.

솔직히 보는 입장에서 별로 정감 가는 커플은 아니긴 했다. 해리가 먼저 꼬셔서 키스해놓고서 다른 사람들이 상금 차감으로 뭐라고 하니 면피하려고 프란체스카한테 덤터기를 씌우고, 프란체스카는 그런 해리가 미워서 다른 남자랑 데이트를 하고 오고, 그 와중에 해리를 잊지 못해서 갈팡질팡 하고, 해리는 그런 프란체스카를 보고 프란체스카가 먼저 사과를 해야만 나도 마음을 열 수 있다고 함(?)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 같긴 한데 그래 니들이 좋다니까 그런가 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보기는 했다만.

이런 '주머니쥐'같은 말 안 듣는 커플마저도 마지막에는 서로의 발전적인 미래를 꿈꾸고, 서로를 위한 깊은 관계 맺기에 진심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 이게 되네? 진짜 되네? 심지어 지금도 잘 만나고 있다고 한다.


로맨틱 관계를 제하고도 사람들은 합숙을 통해 각자의 성장을 이뤄낸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이전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벼운 관계에만 천착하게 만들었던 과거 기억을 떨쳐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는 여기 섹스하러 왔어요!"를 외치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인격적 성장을 이뤄내서 기뻐요, 나는 앞으로도 나아지려고 노력할 거예요"라고 인터뷰한다. 괜히 나도 같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들이 변한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어서.


3. 열네 명의 캐릭터, 각자의 선택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청소년 드라마 같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얘네 다 멍청해, 난 여기서 얻을 게 하나도 없어, 이 프로그램 기획 의도 뭐라는지 난 관심 하나도 없어"라면서 내내 프로그램의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하던 헤일리는 합숙 도중 리조트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던 매슈는 정작 자기 짝 찾는 데서는 영 성과를 못 낸다. 결국 자신의 발전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며 스스로 리조트를 떠난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은 섹스 금지 규칙을 인지한 상태에서 중간 합류를 했다. 그중 두 명도 리조트를 떠났다. 프로그램이 말하는 가치에 끝까지 공감하지 못해서였다.

이를 두고 프로그램은 이들이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시청자의 판단이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이 이를 두고 굳이 교훈을 주려 하지는 않는다. 이미 있는 사례로도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 테니까.



오래간만에 엄청 재미있게 몰입해서 본 프로그램이라 나도 만족스러웠다. 마냥 자극적이지도 않고 나름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 매력적이었고, 그들이 바뀌어가는 순간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더 깊이 파고들려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 텐데, 왜 넷플릭스는 캡처가 안 되죠...? 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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