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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Oct 25. 2020

책벌레는 아니지만 글은 좋아합니다

#04. 내가 사랑하는, 글

책을 자주 읽나요? 아니요.

글을 자주 쓰나요? 일기만요.

그런데도 글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죠, 내가 좋아한다는데.




초등학생의 단골 숙제라면 역시 일기장과 독후감 제출 아닐까? 당시 나는 독후감을 하루에 일곱 개를 쓰기도 했었다. 물론 방학숙제가 밀려서 그렇게 되긴 했지만 독후감 쓰는 게 크게 괴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생 때는 새 학기 교과서를 받으면 늘 국어 교과서부터 펴봤다. 그리고 안에 실린 소설을 책 읽듯이 읽었다. 교과서라기보다는 그냥 단편소설집마냥 책을 대했었다. 그게 책이든 교과서든 소설은 재미있었다.

중학생 때는 팬픽을 읽느라 밤을 새기도 했었다. 스마트폰 보급 이전 텍스트뷰어 메뉴가 따로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도 글을 꾸준히 읽는다. '책'은 안 읽어도 '글'은 읽는다. 거의 매일 뉴스레터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아티클을 찾아 읽는다. 나는 유튜브보다 리디셀렉트가 더 재미있다.




미디어의 중심이 영상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럼에도 글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글이 내가 가장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체 집중력이 짧고 산만한 편이라 지루함을 견디는 게 힘들다. 그래서 늘 손으로 무언가 하고 있어야 했다. 글을 읽을 땐 책을 쥐고 있든 폰으로 스크롤을 내리든 내가 손을 움직여야만 한다. 반면 영상을 틀어두면 몇 초 보다 말고 다시 손을 꿈지럭댄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에게 글은 최적의 매체다. 같은 정보를 가장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닭볶음탕 레시피를 보기 위해 5분짜리 동영상을 기다리며 보느니 글로 정리된 설명문을 30초 만에 읽는 편이 내겐 더 편하다. 영상으로 구구절절 설명하기를 기다리기보다 그냥 내가 원하는 단락에 필요한 만큼의 시간만 들여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성장배경과 성격 덕분인지 다행히 글재주가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긴 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편이라고 생각하게 되자 글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이전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작문 관련 책도 읽고 작법서도 곧잘 찾아 읽었다. 그럴수록 글이 더 재미있다. 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고, 소설이 퍼즐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을 때도 있다.




유튜브와 틱톡으로 대표되는, 대 영상 시대에 태어난 텍스트 중심의 인간. 아무도 종이책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시점에서 가끔은 내가 하필 좋아하는 게 글이라는 사실이 서럽기도 하다.


하지만 글의 파이는 줄어도 그 중요성은 줄지 않는다고 믿는다. 글은 가장 원초적인 방식의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 끝까지 제 자리를 지킬 것이다. 영상에 익숙하고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글을 잘 쓰는 사람의 가치도 높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글이 좋다. 글을 좋아하는 나도 좋다. 독서광도 책벌레도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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