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by luna Han 윤영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아침 7시까지 등교해야 했다.

아직 해가 다 떠오르지 않은 시간, 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침 자습을 하고, 방송수업을 1시간 듣고, 그제야 1교시가 시작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루가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갈 수 없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남아 있었다.
이름은 자율이었지만 그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석식 시간에도 교문 밖으로 나가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학생주임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이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학교 담은 높았다.

아침에 들어가면 밤 10시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곳.

그 안에서의 나는 입시생이라는 이름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자유로운 어른을 꿈꿨다.

가방은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끝내겠다는 각오처럼 책으로 가득 차 늘 무거웠다.

10분 쉬는 시간, 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전력으로 달렸다.
빵 하나라도 입에 넣겠다는 마음으로.

닫힌 교문 밖, 늘 가던 분식집의 떡볶이가
그날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나는 교문 앞을 서성이며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다.
떡볶이 한 입만 먹을 수 있다면, 그날 하루가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배가 고팠고,
나는 늘 시간보다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신 등급을 높이기 위해 하루를 쪼개 쓰던 시절.

그때의 나는 학력고사라는 하나의 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방향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대학 합격이라는 결과에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어느 날, 시험지를 받아 들었을 때였다.

빨간 펜과 수성펜을 번갈아 쥔 손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는 순간에도 틀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고,
답안지가 밀리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섰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나는 문제를 풀기보다 시간부터 가늠했다.

시간은 내가 따라잡기 전에 한 발 먼저 앞서 나가 있었고,

마음은 이미 다음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는 문제를 마주하고도 잠깐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 짧은 틈 사이로 틀리면 끝이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어왔다.

아는 문제인데도, 나는 자꾸 내가 틀린 답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고3 때,
국어 선생님이 툭 던지듯 하신 말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지금은 내 말이 들리지도 않겠지만, 너희가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는 정말 어른이 되었다.

어떤 일들은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 관계들은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짚어낼 수 없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럴 때 문득, 그 말이 돌아왔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

그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정답이 있어서였다

그 시절에는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고,
답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었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는
대충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은 그렇지 않다.

문제는 형태를 갖지 않고, 답은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는 종종 문제조차 모른 채 하루를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정답이 있어서 편안했던 것이 아니라,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답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답이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공부가 쉬웠다는 말은 공부가 편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설명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자랐고,
이제는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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