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맛

적당히란 레시피에 담긴 마음

by luna Han 윤영

감히 나는,
내게 손맛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손맛은 내가 만든 음식이 아니라,
내가 버텨온 시간에서 나왔다.

세비야에서 7년 동안 한식당을 했다.
내 몸이 조금만 더 버텨주었다면 어쩌면 지금도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불 앞에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장점은 근성이었고, 인내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식당에서 손님 앞에 놓이는 음식은
반드시 맛있어야 한다는 내 일에 대한 자존심이 있었다.


식당을 그만둔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가끔은 나를 찾아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쉽고, 그립다.

한 끼의 음식으로 맺어진 인연인데도
어떤 얼굴들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마음에 남는다.

프랑스에서 매년 휴가를 오던 노부부,
독일에서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식당을 찾던 노부부,
그리고 세비야에 머무는 동안
매일 식당을 찾아오던 한국 여행객도 있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와 같은 자리로 앉아 주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몇 달에 한 번씩 가디스에서 오던
네덜란드 가족이 있었다.

처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로
“아주머니~”
하고 부르는데,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조선소에서 설계를 하는 분이었고,
거제도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가족은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우리 식당에 없는 음식을 먼저 찾았다.

삼계탕이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삼계탕은 바로 내어놓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재료도, 시간도 필요한 음식이었다.

나는 다음에 세비야에 오게 되면 이틀 전에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세 달쯤 뒤에 전화가 왔다.

나는 그 가족을 위해 장을 봤다.
한국에서 가져온 삼계탕용 약재도 아끼지 않고 꺼냈다.

작은 영계를 손질하고,
찹쌀을 넣고,
약재를 채우고,
불을 올렸다.

그날 나는
삼계탕을 끓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다시 데우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주문받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먼 타국에서 한국의 맛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와 준 사람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방식의 마음이었다.
그들이 떠나온 시간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그날 삼계탕을 끓이며 생각했다.

손맛이라는 건
손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맛으로 음식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 음식이 놓였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가끔,
그 가족을 위해 삼계탕을 준비하던 그날의 주방을 떠올린다.


적당히란 레시피에 담긴 마음

손맛이라는 건
어쩌면 간의 정확함이나 조리의 능숙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엄마들의 레시피처럼,
‘적당히’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마음 같은 것.

누군가의 그리움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마음,
그 한 그릇을 기다려온 시간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태도,

나는 그것까지도 손맛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손맛은,
입에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가족이 떠오르면
아쉽고도, 고맙다.


내가 내어놓았던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세비야에서 다시 만난 한국에서의 한때였고,

그들이 떠나온 시간을 잠깐 다시 살아보게 한 것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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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1.jpg 그리고 그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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