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표현’이 위법이 되는 경계에서

그 말, 그 행동이 죄가 되는 사회

by luna Han 윤영

요즘은 어떤 이야기를 쓰느냐보다,

어떤 이야기를 쓰지 말아야 할지를 더 오래 고민하게 된다.


짧은 메시지, 개인적인 경험, 소박한 표현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나 명예훼손, 혹은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사실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문자 몇 번 보낸 게 왜 문제가 되죠?”

“사과를 요구한 게 어째서 죄가 되나요?”


하지만 지금의 법적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진심’보다는 ‘해석’, ‘맥락’보다는 ‘불안’이 우선되는 사회.

그 안에서 말하려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스럽고, 침묵하게 된다.


1. 감정의 표현, 그 경계에 대하여


어떤 일의 끝에서, 혹은 예상치 못한 단절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한다.

무례하지 않게 안부를 묻고, 한때의 오해를 정리하고,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싶은 마음.

또는 누군가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이 너무 차가웠다고 느껴질 때,

늦게라도 덧붙이고 싶은 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표현이 단 한 번이라도 불편함을 유발하거나,

상대의 해석에 따라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법은 그 마음의 맥락이 아니라, 받아들인 방식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어떤 구조 안에서는, 표현하고 싶은 말조차 침묵으로 남겨야만 안전하다.


물론, 이러한 기준이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불필요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 기준이 표현의 자유나 감정의 정당성까지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구조 자체에 대해 한 번쯤은 질문해봐야 한다.


2. 사과 요구도 처벌될 수 있는 구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어떤 일은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는 “그때는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지”라고 묻고 싶어지고,

이해를 구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 같은 표현조차

현재의 구조에서는 괴롭힘, 강요, 명예훼손 등의 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심리적 부담을 주장하면,

‘사과를 요청한 사람’이 피고인이 되는 현실이 실제로 존재한다.


심지어 과거 행정기관이 내린 ‘사과문 제출 명령’조차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의 자유 침해”로 위헌성이 있다는 판단을 받기도 했다.


3. 사실이어도, 말하면 안 되는 말


현행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비록 사실이라도,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 “공익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사실을 말해도 위법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지보다, 어떻게 써야 처벌받지 않을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 주어를 흐리고

• 감정을 삭제하며

• 시점을 모호하게 설정하고

•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한다


표현은 더 이상 자유의 실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언어의 기술이 되고 있다.


4. 경계 위에 놓인 실제 사례들


“내 돈 주고 사먹은 거, 후기도 못 써?”


한 블로거가 개인 블로그에 식당 후기를 올렸다.

불친절하고 음식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해당 식당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그는 “내 돈 내고 먹은 걸 쓴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해당 글이 ‘영업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출처: 아주경제, 「‘내돈내산’ 후기 썼다가 고소당한 사연」, 2023.03.30.


“직장 내 갑질을 말했을 뿐인데, 가해자가 된 기분”


한 직장인이 술자리 강요와 모욕적 언사를 견디다 못해

사실 관계를 정리해 SNS에 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대표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대법원은 공익 목적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는 수개월 동안 법정에 불려 다니며 직장을 떠나야 했다.

출처: 아주경제, 위 기사 동일.


“공익 제보였을 뿐인데… 내가 가해자라고요?”


조직 내 문제를 폭로한 A씨는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 예고를 받았다.

그는 결국 글을 삭제했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출처: 경기넷 웹진, 「공익제보자 이야기: 불이익과 침묵 사이에서」, 2022.


5. 자기검열로 이루어진 표현의 기술


오늘날의 글쓰기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일이 아니다.

• 누구를 특정하지 않기 위한 설계

• 누군가의 불쾌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구성

• 오해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표현의 정제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기.

그것이 지금, 표현의 생존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위험한 사회에서,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말하지 않는 방식만 허용된다면, 그 사회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중요한 건, 누가 어떤 말을 왜 했느냐가 아니다.

그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구조 안에서 판단되는가이다.


이 글은 그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진실이 죄가 되는 경계’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 연재 안내

이 에세이는 실명으로 연재되는 회복의 기록입니다.

Luna Han 윤영의 연재 일정

《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진실유죄 #표현의경계 #공익제보리스크 #내돈내산고소 #명예훼손위험 #자기검열사회 #법의경계 #LunaHan윤영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