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km 너머의 세상

2016년 2월 21일, 타이페이.

by 디어

소포모어 증후군



대학생들에게도 소포모어 증후군이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그 환자였던 셈이다.


입학하고 첫 2년간 (특히 헌내기 때의) 나는 꽤나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다.

내가 좋아서 택한 전공 공부를 정말 즐겁게 했고 전공에 대한 애정이 넘친 나머지 학생회 간부를 맡았으며

멘토로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주말을 아르바이트에 헌신한 댓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2014년의 내 삶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차있었다.


해가 바뀌고 계절학기가 종강하자마자 망할 재수강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지금도 내게 가장 특별한 여행으로 기억되는 스페인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시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홍콩에서 서울로 돌아 왔을 때 내 삶은 거기서 그대로 멈췄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끔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딱 한순간에 모든 게 멈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밥 한 끼 먹으려면 친구들이 말 그대로 2주쯤 전에 나를 '예약'해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중심에 섰던 모든 것의 변두리에 서 있었다.

모든 임기가 끝나는 순간에 맞춰 그간 충분히 힘들었다며 자발적으로 많은 것을 정리해놓고는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여유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1년을 헤맸다.


물론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아무 것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그건 나답지 않으니까.

내내 버킷리스트였던 한국사를 공부했고 드디어 운전 면허를 땄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으며 대학생 강연자로서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사망년의 특권을 발휘해 학교에 가는 날을 줄이고 나를 위한 것, 나를 위한 시간을 늘리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하필 그 기간에 내가 불운하기도 했던건지 어디선가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고

나는 찾아온 여유에 감사하면서도 늘 불안에 시달렸다.

목표지향적인 동시에 끊임없이 바쁨으로써 내 존재 가치를 확인했던 나는 여유를 누릴 줄 몰랐다.







'나'를 위해 사는 것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제도권 교육 내에서 자아를 찾아 실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개인적인 견해일 수는 있지만 절대 다수가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시스템 아래에서

스스로를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대체로 시간 낭비로 여겨진다.


나는 학교를 때려 치우고 부모님의 기대를 엎어 메칠 깜냥은 없었지만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공부하게 될 지 모르는 곳에서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할 용기는 있었다.

안타깝게도 전공에 있어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확신은 없었고

사실 살면서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런 확신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 할 수 있을지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최선'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내 전공을 보고 굶어죽기 딱 좋다고 이야기하고 부모님은 여전히 내 전공을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나는 4년 전 이맘때의 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고

전혀 새로운 시각을 얻었으며 나와 다른 의견을 듣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전공이 준 모든 장점을 차치하고

내 전공은 내가 스스로를 위해 주체적으로 했던 첫 선택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회학 그리고 사회학도들을 향한 좋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전공이 자랑스럽다.







대만에서 시작한 인생 첫 자취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를 위한다는 같은 맥락에서 휴학을 결심했다.

휴학은 심지어 대학을 가기 전부터도 생각했던 일이지만 그 당시가 딱 타이밍이었다. 정말로 쉬고 싶었다.

인생 처음으로 학교가 가기 싫었고 지옥 같은 통학에 진절머리가 났다.


대학 생활 내내 쌓은 프레젠테이션 스킬에 PPT까지 동원해서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결국 휴학은 하지 못했고 그 상태로 한 학기를 더 다녔다.

어떤 날은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 갑자기 너무 서러워져 펑펑 울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저 학점을 달성했다.



지쳤다는 말이 가장 어울렸던 그 때 나는 내가 더이상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휴학에 대한 사연만 해도 책 두 권은 나오겠지만 한 학기 내내 걸친 타협과 반항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결국 나는 타이페이행 비행기를 끊었다.


2016년 2월 21일, 그렇게 나는 타이페이에 입성했고

지금 6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울고 웃고 하며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평소 기록해두지 않으면 모든 순간을 잊어버릴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찍고 적어두는 편이지만

내가 대만에 오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타이페이 생활기가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씩 남겨보려 한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내 스물둘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그 순간 순간의 느낌들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기도 하고!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해,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