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이 평등해지는 그 날까지

2017 서울 퀴어 문화 축제

by 디어



※ 이 글을 쓰기 앞서 저는 이성애자임을 밝힙니다. 헤테로의 입장에서 즐긴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적고자 했으며, 제가 헤테로이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하거나 LGBT 분들이 느끼시는 퀴어 문화 축제의 무게감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수정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알려주시면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WE STAND RIGHT HERE RIGHT NOW / L SALON



대만에 있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대만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태도였다. 얼핏 보면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대만 시민사회는 사실 특정한 면에 있어서는 굉장히 과감하고, 놀라울 정도로 깨어 있다. 실제로 대만은 (집권 이후의 정치 상황을 논외로 두고) 어떠한 가문적 배경도 없는 차이잉원을 중화권 최초의 여성 수반으로 당선시켰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다.



작년에 타이페이에서 열린 퍼레이드(공식 명칭 Pride Parade)에는 무려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이 행진한 길은 한국에서 시청과 광화문 부근을 행진하듯 총통부, 중정기념당 등 정치적 의미를 지닌 곳을 지나 게이 스팟으로 유명한 시먼홍루 쪽(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시먼딩과 반대편으로 시먼홍루 뒤쪽에 모여 있는 술집들은 유명한 게이 바들이다.)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의미 있는 구간이었다. 당시 대만 게이 사회 초미의 관심사는 우리로 치면 헌법재판소 격인 사법원이 동성결혼에 관한 현행법 위헌 여부를 논의하는 일이었다. 사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면 동성결혼 합법화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퍼레이드의 슬로건을 직역하자면 '남의 결혼은 네 알 바 아니야' 정도였다. 그리고 올해 5월, 대만 사법원은 현행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오늘 서울 광장!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대만에서의 경험과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올해는 꼭 퀴어 문화 축제를 가보고 싶었다.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짧고 알차게 축제를 즐기다 왔다.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축제에 함께 했고 부스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에이즈에 걸려 죽을 거라며 폭언을 퍼붓던 사람이 너희는 다 틀렸다고 말할 때마다 '다른 겁니다.'라고 짧고 굵게 맞받아치며 유쾌하게 걸었다. 짙은 하늘에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공식 굿즈인 무지개빛 리본들이 살랑거렸다. 사회적 차별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사람들이, 오늘 시청 광장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퀴어 문화 축제가 LGBT만을 위한 축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게 LGBT를 더 또렷하게 갈라놓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울려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느낀 축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한껏 즐겼다. 본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쿨하게 무시했고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않았다. '축제'라는 말이 딱 적당했다.



프라이드 뱅글



100개가 넘는 부스가 열린 만큼 신경 써서 준비한 게 느껴졌다. 주한 대사관들과 대학 동아리, 심지어 구글코리아까지 다양한 부스들이 열렸고 정성껏 마련한 다양한 컨텐츠들을 접할 수 있었다. 후원하면 받을 수 있는 공식 굿즈인 프라이드 뱅글을 못 받은 게 아쉬웠지만 리본이나 핀 배지 같은 공식 굿즈들도 전부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예뻤고, 부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이하 차세기연)와 L살롱 부스가 가장 인상 깊었다.





차세기연이 준비한 여러 가지 컨텐츠 중 프라이드 스티커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스티커들이 있었다. '벽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LGBT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LGBT는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이성애자는 하나의 권력이자 디폴트로 여겨지지 않고 그저 하나의 정체성으로 스티커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좋았다. 오늘은 기독교뿐 아니라 조계종에서도 부스를 열었던데 종교를 넘어 '차별 없는 세상'이 점점 이 사회의 흐름이 되어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물줄기가 되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주어진 숙제겠지만.



KakaoTalk_20170716_002903247.jpg L살롱의 피켓! 뒷면에는 '우리는 _______'라고 자유롭게 적을 수 있었다.



L살롱 굿즈들은 정말 다 예뻤다. 화관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길래 어디 건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L살롱 굿즈였다. 그러나 예쁜 굿즈들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직접 쓰는 피켓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녔는데, 인상 깊은 문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 와서 쓸 때마다 사진 찍어 가시던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에 모아놓은 것들도 보고 싶다. 나와 친구는 각각 '우리는 네 곁에 있을게', '우리는 웃으며 싸운다 :)'라고 적었는데 서로 정말 너같이 적었다고 웃었다. 본 것 중 최고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였다.



축제의 순기능이 ‘사회적 갈등 치유와 화합과 평화 유도’라고 볼 때, 퀴어문화축제는 인권 이슈를 문화의 장으로 펼치며 공공성과 다양성 두 가지를 모두 담아내는 행사입니다. 축제는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즐거움을 나누는 화합의 기회가 되고자 합니다. (KQCF 공식 홈페이지에서)



근 몇 년간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대에서 최씨 아저씨에게 보내는 대자보가 붙었을 때, 이화여대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을 때, 작년 촛불 집회에서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시위대가 의경의 눈을 씻어 줬을 때 그리고 오늘까지. 사람들은 점점 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점점 더 또렷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이 꼭 투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나는 총을 겨누는 너에게 꽃을 들고 맞설 거라고 하듯 말이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완전무결할 것을 요구하며 조금의 흠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바꾸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고민하는 중이며 이전보다 훨씬 폭넓은 문제의식을 다 함께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 뿐 아니라 누구나 이 사회에 문제가 만연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세대가 이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것을 바라보는 것은 항상 불편하다. 나와 다른 것을 듣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회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때로는 싸우고 화해하며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름에 대한 비난은 쉽고, 문제의식은 이미 충분히 공유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과 각자의 의견이라는 날실과 씨실을 엮어 '대안'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대안에 대한 의견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또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때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대화의 파트너이며 함께 합의를 만들어갈 동반자다.



이미지 출처 / KQCF 공식 홈페이지



나는 성소수자 친구들이 많다. 물론 '많다'라는 게 절대적인 기준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평균적인 한국인 기준에 비춰보면 월등히 많은 것 같다. 한 번은 다 같이 술도 한 잔 하고 신나게 놀고 집에 걸어가고 있는데 한 친구가 뜬금없이 사실 내가 부럽다고 하는 거였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봤는데 친구의 대답이 너무 마음 아팠다.



루나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됐잖아.



그렇게 말한 친구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 중 한 곳에서 나고 자란 데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모자란 것 하나 없는, 본받을 점이 많은 밝고 다정한 성격의 멋진 친구였다. 친구가 처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게 부럽고 좋은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때 '아, 이 친구도 이런 상처를 갖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부류에 자신이 속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그 고민의 무게를 나는 절대 모르겠지 싶었다.



나는 친구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뭐가 '문제'인지 자체를 모르겠다. 사람이 자로 잰 것처럼 똑같을 수도 없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 지도 이해가 안 된다. 연애와 결혼은 지극히 사적인 부분인데 굳이 남의 사랑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나 싶다. 가끔 우리는 지나치게 타인에게 관심이 많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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