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 그대로 김기석 목사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세상의 논리와 하늘의 논리 중간에 서 있는 청년이 마음속에 갖고 사는, 혹은 갖고 살아야 할 문제와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편지 형식으로 하고 있다.
책은 굉장히 얇지만, 글 한편한편이 던지는 화두는 묵직하다.(특히 이 편지들이 쓰인 시기가 2016 ~2018년으로 2014년 세월호 사건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등 비교적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읽는데 겨우 200 페이지 가량을 읽는데 10일이 걸렸다. 하루에 20페이지 정도를 넘겼다는 소리다. 그 이상 읽으면 조금 이 책을 읽는 맛이 떨어진다. 속독을 권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작가의 직업이 '목사'이자 '문학평론가'이다 보니 글에서 그것이 묻어 나온다. 우선 안부를 묻고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일상의 이야기 속의 문제를 꼬집는다. 이를 시나 철학가의 글을 빌려 구체화한다. 앞서 말한 문제에 대해 더 깊게 들어가 독자를 암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보라든지, 성경의 구절이 등장한다. 그 내용은 보통 대안으로 제시되는데, 그 대안은 모순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오래되어 새롭게' 느껴졌다. 결론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빌려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가 보면 어떨까요?'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고, 마지막 끝인사가 나온다. 약간 교회 설교를 연상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글이 전개되기 때문인지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쓰이는 단어와 어구다. 눈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꽤나 많다. 그러나 그것이 멋을 부리기 위해 억지로 구겨 넣은 현학적인 단어가 아니라 딱 그 상황에 맞는 단어와 어구다. 반대로 성경 구절을 쓸 때는 새번역성경을 발췌하였기 때문에 쓸데없이 어렵지 않고 읽기가 쉽다. '성경을 훼손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여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쓰는 일반 성경책(=개역개정)과는 다르기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불교에는 법정스님, 천주교에는 이혜인 수녀님,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종교인들의 글을 꼽자면 이렇게 두 분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몇몇 글은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 눈에는 익숙하다. 근데, 정작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신도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딱히 꼽을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그냥 찾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오늘 어쩌면 그런 글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으나, 성경적 지식이 없어도 읽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차례
하나님 나라의 꿈에 사로잡힌 삶
서자의 당당함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
우리 존재에 대한 기반
우리 속에도 하나님의 분노가 있기를
촛불 하나 밝혀놓고
참된 자유로 이끄는 삶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연습
환대의 공동체
님이 오신다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일과 예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
종교와 폭력이 결합할 때
정의와 공의의 토대 위에 세운 세상
미제레레(Miserere)
예수를 외롭게 하지 말라
호랑이는 당나귀가 아니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발췌
내가 무탈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불행 앞에서 함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무분별한 열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71p. '종교와 폭력이 결합할 때' 中)
소설가 이승우 씨에게서 나는 "서자의 당당함"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서자들은 피해의식 속에서 살기 쉽습니다. 눈치꾸러기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서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아버지나 적자의 호의에 기대지 않는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의 챔피언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의 법칙을 따르다가는 모두 숨이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따로 만들려는 의지, 바로 거기에 서자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28p. '서자의 당당함' 中)
회의는 비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더 깊은 인식에 이르기 위한 통로입니다. 회의를 허용하지 않는 믿음은 불안정합니다. 오랫동안 확고한 믿음과 주저하지 않는 순종을 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순치된 이들에게 이 말은 매우 불경스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의라는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은 신앙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단 한 번의 타격으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교리 혹은 교회의 가르침은 누군가의 머리를 덮는 쇠항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보호해 줄 수도 있지만 항아리를 쓴 채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을 찢어야 비로소 더 광대하고 맑은 세계가 열립니다. 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기존의 가르침을 다 부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유를 통해 신앙적 주체가 되어 살라는 말입니다. (48p. '우리 존재에 대한 기반' 中)
그리스어로 '진리'를 가리키는 단어는 '아레테이아'입니다. 이 단어에는 망각을 뜻하는 단어 '레테'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진리란 그러니까 망각을 깨트리는 것, 그래서 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99p.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연습' 中)
하지만 달아나서는 안됩니다. 사실 달아날 수도 없습니다. 인생은 지지고 볶으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혹 시적 황홀경이 우리 삶을 빛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산문적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깊이 접속하는 것도 우리 삶이고,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염려하는 것도 우리 삶입니다. (189p. '미제레레(Miserere)' 中)
아예 새로 본/아니면 오랜만에 봐서 낯설던 단어들
(장군) 죽비: 주로 대나무로 만들며, 가운데 빈 틈이 있어 나무 쪽 부분을 부딪치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체의 2/3 정도를 갈라지게 하고, 나머지는 손잡이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 죽비보다 특별히 큰 것은 장군죽비라고도 부른다.
이드거니: 충분한 분량으로 만족스러운 모양 / 시간이 좀 오래면서 분량이 많게
부박하다: 천박하고 경솔하다
중뿔나다: 어떤 관계없는 사람이 불쑥 참견하며 나서는 것이 주제넘다
해찰(하다):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 / 마음에 썩 들지 않아 물건을 부질없이 집적거려 해치다
바장이다:짧은 거리를 부질없이 작은 걸음으로 자꾸 왔다 갔다 하다.
신산스럽다: 보기에 사는 것이 고생스럽고 힘든 데가 있다.
데카당스: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문예 경향. 병적인 감수성, 탐미적 경향, 전통의 부정, 비도덕성 따위를 특징으로 한다.(=퇴폐주의, 오스카 와일드,랭보!)
무지근하다: 띵하고 무엇에 눌린 것처럼 무겁다
순치되다: 길들여 부리기 좋게 되다
가뭇없다: 전혀 안 보여 찾을 길이 없다
품부: 선천적으로 타고남
갈마들다: 서로 번갈아들다
숨탄것: 숨을 받은 것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묵정밭: 오래 내버려두어 거칠어진 밭
돌올하다: 높이 솟아 우뚝하다. / 두드러지게 뛰어나다
덧거칠다: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까탈이 많다
여여하다: 초록이 무성하다 / 위엄 있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