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골목길'하면 함께 생각나는 단어는 '으슥한', '외진', '고요한' 같은 단어였다. 그런 골목길만이 줄 수 있는 느낌에 영감을 받아, 신촌블루스의 '골목길', 혹은 양동근의 '골목길'같은 곡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조금 섞자면, 초등학교 때 동네 불량배들에게 돈을 빼앗긴 경험들 때문인가, 골목길 앞에 가장 쓰기 좋은 단어는 아직도 '으슥한'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런 골목이 변했다. 요즘은 '골목길'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역시 '힙(Hip)하다'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골목은 구경거리들을 모아둔 작은 박물관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옛 정취, 향수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SBS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도 생겼다. 가장 선두에 섰던 홍대 거리를 시작해서 서울에서는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이 생겼고, 지방으로 가면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전주 한옥마을, 대구 김광석 거리 등이 생겼다.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지간히도 돌아다니며 즐기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다 도시 안의 골목을 즐기는 수준에서, 조금 더 골목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계기는 유현준 교수, 지금은 의원이 된 김진애 교수가 tvn <알쓸신잡>을 시작으로 여러 매체에 출연하여 도시를 설명하는 방식을 본 것이었다. 도시를 보는 건축학자/도시학자의 눈은 그때 당시 아무 개념이 없던 나에게 '충격'이었다. 같은 공간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고, 그 안에는 건축, 디자인, 문화 기획, 경제학, 경영학 등 다양한 지식이 혼합되어 있었다. 내가 골목길들을 누비며 다닌 골목길의 '매력'을 '왜'느끼는가에 대해 아주 말이 되게 설명을 해줬다. 문득, 누군가가 그런 것을 조금 정리해주고 우리 주변에 적용하는 것을 '쉽게' 써준 책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책을 찾았다. 바로 이 책이다.
프롤로그_골목길의 미래, 경제학에 묻다
1장_왜 골목길에 다시 사람이 모이는가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은?
자유주의자의 골목길 사랑 방식
골목길에 왜 경제학인가
골목길 경제학은 무엇을 질문해야 하나
골목상권이 떴으면 누군가는 졌을 텐데
2장_사랑받는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
다운타우너 : 골목길을 사랑하는 우리의 이름
나는 홍대에서 산업을 만난다
뉴욕타임스가 부산을 추천한 이유
생존을 위해 자동차를 포기한 일본 소도시
3장_골목상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물리적 조건
젠트리피케이션은 막지 못했지만, 듀플리케이션은 막았다
다시 동네 상가로 돌아간 골목길
스타벅스 임팩트
길은 길로 평가 받아야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완벽한 골목상권
골목길을 복원하는 상하이
역사가 작품이 되는 도시 에든버러
4장_골목을 골목답게 만드는 정체성과 문화
티옹바루에서 싱가포르의 미래를 엿보다
원하는 일을 하고, 살고 싶은 삶은 사는 사람들
히피들이 성공한 골목길
성수동, 이단아 이재웅의 또 하나의 실험
작가의 도시 브루클린
뉴욕 골목상권의 미래
5장_장인 정신과 기업가 정신
지역사회와 친환경 슈퍼마켓의 상생
아라리오길, 도시여행자의 제주
다운타운 상가 조성의 정석, 마로노우치 나카도리
광주 골목길을 위한 공공미술과 장진우 식당의 콜라보
대전 성심당 거리에서 본 원도심의 미래
도시 살리기가 대학이 일이 되다
6장_젠트리피케이션 신화와 대안
젠트리피케이션, 과연 예방해야 할 질병인가?
포스트 젠트리피케이션 서울의 과제
지속 가능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모델, 장인 공동체
7장_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골목길 정책
C-READI 모델
단기 상권 조성에서 장기 산업 육성으로
골목장인을 육성할 장인대학을 설립하자
골목장인 기획사 육성해야
관광정책이 골목산업 정책이다
지역 활동가가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
에필로그_문화산업으로 진화하는 골목상권
참고문헌
이 책의 내용을 목차를 보며 요약을 하자면, '사람이 모이는 골목길의 비밀을 경제/건축/문화기획 등 여러 분야로 설명하고(특히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이미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 성수동 등 지난 몇 년간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구도심 골목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기존 가게가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데, 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긍정/부정적 측면을 설명하고, 이제부터 골목길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1장~7장까지 제목만 봐도 글의 흐름이 보인다. 골목길에 대해 '왜 다시 골목길에 사람이 모이는가'에서부터 시작해 '사랑받는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 '골목상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물리적 조건' '골목을 골목답게 만드는 정체성과 문화' '장인 정신과 기업가 정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골목길 정책' 등을 굉장히 꼼꼼하게 다룬다. 국내는 물론 해외 사례도 제시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상하이, 에든버러, 티옹바루(싱가포르), 브루클린 등의 도시는 읽다 보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6장 '젠트리피케이션의 신화와 대안'이다. 줄곧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봐왔다. 골목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상인들이 갑자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저자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을 인정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낙후 지역의 재생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정 수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동반하지 않는 원도심 재생은 불가능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지역은 계속 도태되거나 대규모 재개발이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낙후 상태의 악화와 대규모 재개발이 초래하는 비용과 고려할 때 젠트리피케이션 비용은 결코 높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이 부분이 신선했다. (물론, 뒷부분에 과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해결책에 대한 제안이 나온다. 조금 과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마지막으로, 결국 이런 모든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장인 공동체'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건물주와 상인이 같은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건물주에 대한 협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대기업 브랜드와의 경쟁도 벅찬 독립 상인들을 위해 자영업 역량 강화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립 상인들을 위한 교육과 공공재 투자는 단순히 가게 1개를 살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골목상권을 살리고 우리 사회 불평등을 줄이는 길의 시작이라는 내용을 끝으로 책은 끝난다.
앞서 '쉽게 쓴 책'라고 말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보내기 용도로 읽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 읽는 시간은 출퇴근 지하철 시간인데, 이 책은 꼭 다시 집에 와서도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용어가 일상에서 잘 쓰는 용어가 아니다), 이 지역이 어딘지 한 번씩 컴퓨터로 찾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중에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인 것은 확실하다. 도시학이나 창업, 도시기획, 행사 기획 등에 종사하는 분들, 혹은 그런 곳으로 진로를 정한 분들이 읽으면 나보다 더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 생각하고, 꼭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