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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Jun 26. 2023

사람이라는 한 권의 책

대화의 즐거움과 느슨한 연대에 대한 이야기

지난 주말 아침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6월의 초록이 가득한 숲길도 달리고,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난 개천을 따라서도 달렸다. 초여름이 되면서 이른 아침부터도 햇빛이 강해져 땀이 정말 비오듯이 쏟아졌지만, 탈수가 걱정되기도 하고 피부가 그을릴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무척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한바탕 시원하게 달린 후에 사람들과 나누는 차갑고 단 커피와 여유로운 대화는 그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특히 지난 주는 평소에 내가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던 분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뵌 분을 점심도 훨씬 지나 늦은 오후에야 보내드렸으니, 얼마나 몰입해 있었던 건지.


동생은 요즘 내게 도파민 중독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동생의 권유로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하여 대학 친구도, 직장 동료도, 가족도 아닌 온전한 타인과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본 것이 2년쯤 전이다. 그 후로 이 모임 저 모임을 옮겨다니며 한 달이면 서너 번씩 독후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달리기 모임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게 작년 봄쯤부터다. 그리고 이제는 무려 4개의 러닝크루에 가입해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마다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엄마는 무슨 카톡이 그리 많이 오냐고 하신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동생이 내게 도파민 중독을 조심하라고 한 게. 그렇게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 것도 한때야, 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나는 30대 후반을 넘긴 여성 직장인으로, 현재는 혈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넘겼고 가임기도 열심히 지나보내고 있으며, 함께 미래의 가정을 꾸려갈 것을 약속한 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들 (우려 섞인 태도로) 말하는 미혼 또는 비혼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서른 중반을 넘겼을 무렵부터인가, '느슨한 연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앞으로 내가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될지 어떨지, 나는 아직 모른다. 결혼과 출산이란 내게 굉장히 무겁고 중한 사건이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결혼과 출산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본다. 대단하고 굉장하다. 그렇게 느끼는 만큼, 나는 점점 신중해진다. 만약 내가 시기를 놓쳐, 또는 기타 등등의 다른 이유로 새로운 가정을 만들지 못한다면, 내게 '느슨한 연대'라는 것이 무척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어느새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나의 업무나 임금과 관련된 이해득실을 고려하여 대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과 사적으로 만날 기회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들은 나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쳐 비슷한 환경에서 사회화되어 똑같은 직장에 들어와 비슷한 일을 하는 집단 구성원이다. 한 마디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게 될 감정, 배우게 될 생각들에는 한계가 있다. 대학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만약 내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그로부터 또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내 사회적 관계망은 직장과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이들로 마무리되는 셈이었다. 그래서는 자아가 (어제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건 싫었다.


주말에 나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분도, 나와 비슷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달리기를 하면서 뵙게 된 분이지만,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의 내밀한 부분에 함부로 호기심을 갖는 것이 주저되어 내심 걱정했지만, 그럼에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힘들거나 즐거웠던 순간들, 달리기 외에도 좋아하는 것들-특히 책과 여행, 사회생활의 고단함과 어려움, 말과 글의 무거움, 지나간 인연들, 앞으로의 삶의 태도 같은... 첫 만남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전에 다른 글에도 썼지만 글과 말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분이 워낙 귀기울여 잘 들어주시고, 세심하게 반응해주시는 분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분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을 지하철역까지 배웅해드리고, 오후의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왜인지 오랜 꿈을 꾸었다가 깬 것 같은 아득한 기분이 되었다. 읽기를 손꼽아 기다린 좋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책을 꼼꼼하게 공들여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은 뒤의 기분. 맛있는 것을 먹고 난 뒤처럼 든든해지는 기분, 그러니까 마음이 불러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그렇구나. 내가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그 사람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구나. 그러고 보니 평소에 독서모임에서도 내가 가져온 책을 소개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책을 소개받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가져온 책만큼이나, 그들이 책에 대해 가진 생각이, 그들의 삶이 궁금하고 재미있다.


내게 느슨한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그것이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그로부터 보다 많고 다양한 것을 느끼고, 보다 많고 다양한 것을 배우고 싶어서. 언젠가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내게는 삶이 온통 배움이다. 매일 무언가를 배운다. 어제의 실패한 달리기로부터 오늘의 달리기를 어떻게 잘 끌어가야 할지를 배운다. 어제의 업무 실수로부터 오늘의 업무를 어떻게 더 원활하게 해나가야 할지를 배운다. 어제 만난 사람으로부터 오늘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을, 해야 할 생각을, 지켜야 할 삶의 태도를 배운다. 때로 모임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사소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배운다. 어떤 말과 글, 어떤 표정과 몸짓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상처 입히고 위로할 수 있는지를. 삶의 모든 경험이 교훈이 된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옛말이 어떨 때는 고루하게 느껴지지만, 내게는 그 구르는 돌이 퍽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현실이라는 거센 물결을 따라 끊임없이 굴러가는 작은 돌멩이. 계속 구르고 닳아지다보면 어느새 동그랗고 예쁜 모양이 되어 매일 새롭고 더 맑은 물을 맞이할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두 그렇게 부지런히 굴러가는 물 속 돌멩이일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가족들의 사소한 염려를 딛고) 나만의 느슨한 연대 안에서 열심히 배워나갈 예정이다. 삶을, 사랑을, 기쁨과 아픔을. 그래서 아마 다음 주말에도 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달리고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여러 권의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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