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돼지엄마가 될수 있을까?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해, 첫날 0시 0분 울산에서 첫 아기 탄생!"
매년 1월1일이면 어김없이 뉴스 메인을 차지하는 기사들 중 하나다.
예전엔 나와는 상관 없는 얘기로 흘려보냈었는데,
이젠 기사를 클릭하고, 갓 태어나 빨갛고 쭈글쭈글한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벌써 돼지띠라니.
처음 아기를 가져야겠다 마음먹고 포털의 출산예정일 계산기부터 돌려봤을 때,
나의 (상상 속의) 아기는 닭띠였다.
나와 띠가 같으니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개띠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강아지를 좋아하니까, 남편과 잘 놀아줄 (응?) 활발한 아이였으면 좋겠다 기대했다.
돼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강아지는 귀엽기나 하지, 돼지는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다. 정이 안 간다.
정을 붙이기 위해 귀여운 돼지 인형을 하나 샀다.
안아보기도 하고 쓰다듬어주기도 하며 정이 듬뿍 들었다.
그리고, 돼지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석 달 밖에 안 남았다.
나와 남편은 5년차 부부고, 4년차 난임부부다.
결혼하고 1년 간은 일 때문에 피임을 했다.
생리주기 어플에 맞춰 자연임신을 시도하다 또 1년이 지나갔다.
피임을 하지 않아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이다.
스스로 난임 진단을 내리고 전문 병원을 찾은 것이 2016년.
이런 저런 검사들을 했고 다소 아쉬운 수치들도 있었지만,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초음파로 배란 상태를 점검한 의사가 "오늘!"이라며 '숙제' 날짜를 내주었다.
숙제는 했지만 시험(임신테스트기) 결과는 꽝이었고,
이후 한동안 병원을 찾지 못했다.
다시 일에 몰두하느라 1년을 흘려보냈고,
다음 1년은 임신한 친구가 추천해준 '디지털 배란테스트기'에 의지했다.
느긋한 편인 성격이지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난임 초기, "마흔 넘어도 안 생기면 포기하고 둘이 살 거야."라고 생각했던 그 마흔이 코 앞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해봐야, 포기한 후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난임 병원을 찾은 게 작년 9월이다.
병원을 바꾸었기 때문에 여러 장의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임신 시도 횟수'라는 항목에 어림 잡아 '30회'라고 적어넣으며 갑작스럽게,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서른 번이나, 무려 서른 번이나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난임 기간이 길어질 수록 주변에서 이런저런 조언들도 많이 듣게 되는데,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랄까 위로의 말은,
"마음을 내려놔야 생긴대."
시험관도 여러 번 시도했던 부부가 포기하고 병원 끊었더니 다음 달 바로 생겼다더라,
한약 먹고 운동 하고 전전긍긍할 땐 안 생기더니,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고 했던 달에 덜컥 생겼다더라...
처음엔 전설의 비법이라도 전해 들은 듯이 귀가 솔깃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되었다.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더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스트레스가 됐다.
그러자 반발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 해서, 내 탓이란 얘기야?"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열심히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생리예정일 되기도 전에 임신테스트기 두 줄 보고 사진 찍어서 난임 까페에 올리는 사람들은 뭐야?
마음은 내려놨는데 테스트기는 매일 해본다는 거야? 마음 안 내려놨는데도 생긴 거잖아!"
결국, 나는 마음을 내려놓는 비법을 수행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냥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올해, 딱 1년만 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보기로.
간절해서 상처 받기도 쉬운 그 마음을 잘 보살피면서.
그리하여 훗날 돌아봤을 때 이 1년이 괴롭고 어두운 시간만은 아니었기를 바라면서.
끝내 아기가 생기지 않더라도, '내가 마음을 못 내려놔서'라고 자책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한다.
'아기를 바라는 사람한텐 주지 말아야지~'라는 고약한 심보의 삼신할매라면,
하...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혹시 삼신할매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니 심한 말은 생략한다.)
로또를 사면서 당첨을 상상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설마, 로또도 마음을 내려놓고 사야 당첨되는 거였나!!!)
나는 미래의 우리 아기와, 둘에서 셋이 될 우리 가족에 대해 열심히 상상하고, 기대하려고 한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겠지만, 일단은 실컷 아쉬워하고, 그리고 나선 한달간 애쓴 스스로를 토닥이며 일으켜 세우겠다.
이번주엔 세번째 인공수정 시술을 받는다.
오늘은 마지막 배주사를 맞는 날이다.
오늘 밤엔, 예쁜 돼지가 나오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