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엄마가 되고 싶어?

난임이 아니었으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들

by 이유

내가 다니는 병원은,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다.

이번달만 벌써 세 번째 방문.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초음파를 보고 시술 날짜를 잡는 시간은 5분을 넘지 않았는데, 오늘은 병원비가 좀 많이 나왔다.

가만 보자... 난포 터뜨리는 주사가 비급여구나.

다음엔 보험 되는 주사는 없는지 물어봐야지. 물어볼 수 있으려나? 흐.

주사는 셀프다. 이전 주사들은 남편이 놔줬는데, 이번 주사는 (남편은 회사에 있을) 정확한 시간에 놔야 해서, 내 손으로 직접 내 배를 찔러야 한다. 벌써부터 겁이 나고 긴장이 된다. 주사 맞은 자국들이 따끔거리는 것 같다...




시험관 시술에 비하면 몸에도 가계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단계지만,

인공수정 시술도 분명 받는 사람에겐 부담이 된다.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기고, 일상의 리듬이 깨지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자주 기분이 가라앉는다.

가끔은 울화통이 터진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가져야 돼!


물론 병원에 가면 나와 같거나 더 힘든 처지의 사람들도 많다는 걸 실감하지만,

거리에 나서면 임산부나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 유모차 행렬까지 왜 그렇게 자주 눈에 띄는지.

가까운 친구들은 결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했으면 1, 2년 내에 자연임신에 성공했다.

포털 뉴스 연예면에는 둘째를 가졌어요, 셋째가 생겼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연예인 임신 기사가 쏟아진다.


반면에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 부부들도 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면, 난임시술에 쏟는 돈과 체력과 마음을 다른 데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오늘의 나는 더 행복해졌을지도 모르는데.

안 생기면 그냥 말지, 나는 왜 무리해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 아기를 특별히 귀여워하는 것도 아니면서.

혹시, 안 생기니까 더 갖고 싶은 오기는 아닐까 의심해본 적이 있다. 오기가 있는 성격이긴 하니까.

오기는 아니어야 할텐데...
나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분명해 보이는데,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막연했다.


작년엔 좋은 기회가 있어 심리상담을 받았다.

난임 얘기를 한참 하던 중에 상담사가 물었다.

"그런데 아기는 왜 갖고 싶은 거예요?"

잠깐 머리가 멍해졌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어서, 열심히 답했다.

"아기가 아니라, 아이를 갖고 싶은 거예요. 나와 남편의 아이요. 3인 가족이 되는 게 꿈이거든요."

"아이는 왜 갖고 싶은데요?"

"2세를 갖고 싶은 건 본능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조건 없이 절대적인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을 경험하고 싶다고."

진심이었다. 부모님이 재촉해서요, 보다는 괜찮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본인을 위해서 아이를 낳겠다는 거네요?"

여기서 잠깐 욱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럼 다른 사람들은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숭고하고 이타적인 마음만으로 아이를 낳나?

"그럼 선생님은 왜 아이를 낳으셨는데요?"

상담 중에 상담사가 아이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어, 아이 엄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저요? 전 결혼해서 섹스하다 보니 생겼는데요?"


늘 배려 깊던 상담사인데, 처음으로 좀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기분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왠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아직도 데뷔가 불투명한 10년차 아이돌 연습생이, 친구 오디션 따라갔다가 캐스팅돼 한 달 만에 데뷔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쳇.

집에 와서 문제의 대화를 복기하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얼떨결에 임신했다면, 결혼하고 나서 금세 아이가 생겼다면,

아이를 왜 낳고 싶은 건지 이토록 오래,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을 거라고.


내가 내게 들려주는 대답은 아직 모호하고,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답이 명확하다고 해서 더 좋은 부모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얼결에, 또는 쉽게 가진 아이라고 해서 사랑스럽지 않을 리도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맹렬히 질문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 한다.

훗날 아이가 생긴다면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아주 많은 시간을,
귀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너를 만나기도 전에 너를 정말 사랑하는지, 사랑할 수 있는지 수백 번도 더 물었었다고.




요즘은 아이를 갖는 것보다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한다.

거리에서 어린아이가 "엄마!"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왜인지 가슴이 철렁할 때가 가끔 있다.


아이를 원했지만 낳을 수 없었던 여자를 영화에서 보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 노부요는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아이를 돌보는 '가짜' 엄마다.

학대받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주워'와 키우면서, 노부요와 그녀의 (역시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들은 아이들의 상처를 감싸 안아준다. 노부요는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요구하지 않는다. "엄마라고 불리면 어떨 것 같아?"라는 질문엔 쑥스러운 듯 답을 얼버무린다. 무심한 척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점점 자라나 친부모 그 이상이 되었던 것 같다.


(가짜) 엄마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아이


이 비정상의 가족은 경찰의 개입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취조실에서 내내 나른하고 태연한 얼굴이던 노부요는, 경찰이 던진 질문 하나에 무너지고 만다.

"아이들이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찡그리지도, 흐느끼지도 않고, 물이나 땀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기만 하는 그녀.


흐느낀 쪽은 나였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눈물에 콧물까지 쏟고 말았다.

케이트 블란쳇도 극찬했다는 안도 사쿠라의 연기력 때문이다.

절대 극 중의 노부요에게 감정이입해서가 아니다!

...거짓말이다.

나도 노부요처럼 끝내 엄마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서럽고, 두려웠던 거다.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도 노력도 아직은 놓지 않았으니까,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살았고 살아갈지는 늘 그려보는 것처럼.




난임일기를 쓰기로 (긴 고민 끝에) 결심하고 발행한 첫 글이 다음 홈&쿠킹 메인에 실리면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찾아와 내 마음을 읽어 주셨고, 내 다짐을 응원해 주셨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조금 부끄럽고, 많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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