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소문내는 거랬는데. 난임이 병은 아니지만.
오늘, 세 번째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주말이지만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고, 보험 지원이 되는 마지막 회차이자 내가 스스로와 약속한 마지막 회차이기도 해서 ㅡ 이번에 실패하면 시험관 시술로 넘어갈 생각이다 ㅡ 다른 때보다 더 긴장을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렸다. 깨면 뭘 좀 먹고, 졸리면 또 눕고, 오늘 하루는 이렇게 빈둥빈둥, 아무 생각 없이 보내기로 한다.
친정이 가까워 토요일 저녁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러 가는 일이 많은데, 오늘은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엄마는 내가 난임시술받는 걸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알린 건 아니었다. 난임 병원에 다니기로 결심하고, 검사를 받고, 초음파로 잡는 배란일과 난포 터뜨리는 주사의 도움을 받아 자연임신을 시도해보고, 1차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나서야 무거운 입을 뗄 수 있었다. 걱정과 조바심과 실망감을 엄마에게까지 안기고 싶지 않아서, 임신에 성공한 뒤에 실은 나 시술받았어, 하고 말하려 했었는데. 시술을 받으며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다 보니, 남편 외에 나를 아끼는 다른 이에게도 엄살을 좀 부리고 싶어 졌던 것 같다. 평생 자식 걱정하며 사는 게 부모의 숙명일진대, 걱정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털어놓고 나니 생각보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쿨한 척, "엄만 너 스트레스받을까 봐 어떻게 됐는지 잘 안 물어보잖아~"라는 말로 궁금함을 얼버무리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때도 있지만, (차라리 그냥 대놓고 물어봐 ㅜㅜ) 엄마가 나의 난임을 알고, 안쓰러워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어떤 힘을 준다. 더 힘들어졌을 때 기댈 곳이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시부모님에게는 병원 다니는 얘길 하지 않았다. 아마 임신할 때까지 얘기하지 않을 것 같다. 임신하지 못하면, 아들 며느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노력과 좌절을 영영 모르고 사시겠지. 이상하게 시부모님과는 나의 힘듬과 아픔을 공유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직 연결된 느낌이 부족해서일까. 시부모님의 궁금증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얘기하기 전엔 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임신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 나는 방송에서 난임시술 얘기를 하는 연예인이나, 유산했던 경험을 털어놓는 주변 여자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죄를 지은 것도, 부도덕한 것도 아닌데, 남에게 떠벌려선 안 되는, 너무 사적이고 은밀하고 '부끄러운'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게 부끄럽지만.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마음은 사라졌는데, 내 얘기를 꺼내려할 땐 자꾸 부끄러운 기분이 밀려와 당황스러웠다. 난임이라는 게, 나는 어딘가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고, 하자 있는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서 화가 났다.
그래도 10대 때부터 서로 볼꼴 못볼꼴 다 보여준 두 친구에게는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주 봐야 하는 친구들인데, 약속을 잡을 때 시술 날짜를 피하기 위해 거짓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만나서 근황을 나눌 때 아무 일 없는 척하는 것도 싫어졌다.
한 친구는 내 얘길 듣고 거의 '환호'했다. 잘 생각했다고. 주변 언니들 보면 시술해서 낳은 아기들이 똑똑한 것 같다고. 넌 시술만 하면 왠지 금방 생길 것 같다고. 친구의 들뜬 목소리만큼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역시, 얘기하길 잘했어.
반면에 한 친구는 내 얘길 듣자마자 너무나 안쓰러워하는 얼굴이 되었다. 참았던 부끄러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공감은 고마워도 동정은 사양하고 싶었다. 자존감보다 자존심이 강한 내겐, 동정받는 것 = 불쌍한 것 = 부끄러운 것이었나 보다.
간절하게 매달리다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아기 문제에 있어서 쿨 해 보이고 싶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내 간절함을 차갑게 외면하려 하는 또 다른 나는, 앞으론 누구에게도 시술받는다는 얘길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두 친구 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 알지만, 정반대의 반응은 나를 조금 혼란스럽게 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는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놓으며 조금 울었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동정보다는 공감을 더 많이 해줄 익명의 독자들을 기대하며, 필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여기 글을 쓴다.
난임을 알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상처 받고 후회하는 일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른 난임 부부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공유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부부만의 비밀로 하는 게 속 편할 수도 있고, 용기 내서 얘길 꺼냈다가 상대의 반응이 예상과 너무 달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난임을 부끄러운 것, 불쌍한 것으로 여겨 괴로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언젠간 우리도 "아기 키우는 거 너~무 힘들다"고 대수롭지 않게 푸념하는 아기 엄마들처럼, "아기가 안 생겨서 엄~청 고생하고 있다"고 맘 편히 투덜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난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내가 되기를. 난임이 실제로 주는 고난보다, 난임이라는 상념이 주는 고통에 더 괴로워하지는 않기를.
그리고, 표현은 제각각이어도 결국은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고맙게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렇게 덜 상처 받고 더 힘을 얻어서, 내일 또 한 걸음을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