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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17. 2019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일

난임 시술 중에도 가끔 방학 기간이 찾아옵니다

'시술이 있는' 달은 참 바쁘고 빡빡하게 돌아간다.


- 과배란 시작, 채취 전.  


열흘 가까이,

매일 아침을 배주사로 따끔하게 시작한다.

아침, 점심, 저녁, 각각 식전과 식후에 시간 맞춰 먹어야 할 약과 영양제들도 있다.

식사를 거르고 먹으면 속이 쓰린 약도 있어서 

매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고, 난자 질 향상을 위해 고단백의 식단을 짜고, 장도 봐야 한다. 시술 전엔 하루 한 끼쯤은 거르기 일쑤고, 라면, 식빵 같은 탄수화물로 두 끼쯤 때울 때도 많았는데, 먹는 거에 들여야 하는 공과 시간과 비용이 참 만만치 않다.


오전엔 주사 영향인지 잠이 쏟아져서 헤롱거릴 때가 많다.

오후엔 정신을 차려 밀린 일들을 하고, 짬짬이 근력이나 유산소운동을 한다.

난자 질을 위해서, 그리고 기력이 많이 빠지는 시술을 견디기 위해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밤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애쓴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호르몬 분비가 가장 왕성하다니까.

저녁 약속은 꺼리게 되고, 즐겨보던 밤 11시 예능 프로들도 끊은 지 오래다.


가끔은 내가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도 앞두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다.


- 채취 후, 피검 전.


채취를 하고 나서 2, 3일은 통증 때문에 평소처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이불 빨래, 대청소처럼 힘쓰는 집안일, 꼭 만나야 할 약속은 채취 전에 모두 해치워두는 게 좋다.

통증이 견딜 만해질 즈음 이식을 하고, 이식 후엔 컨디션보단 불안감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열흘 가까이, 혹시 모를 위험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신(과 배아들)을 지키기 위해 최소화한 행동반경 안에서, 피검사만을 기다리며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떨어진 컨디션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남편이 차려주는 밥을 받아먹을 때면, 내가 아기를 가지려는 게 아니라, 아기가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 피검 후.


실패 소식에 운다. 기운을 낸다.

2, 3일 후 생리가 시작되면 또 운다.

또 기운을 낸다.

생리 3일째. 다시, (채취를 위한 과배란이든 냉동 이식을 위한 호르몬 치료든) 다음 시술이 시작된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이 사이클이 멈출 때가 있다.

난소가 회복되지 않아 시술을 쉬어야 할 때나, 필요한 검사가 있어 시술을 건너뛰어야 할 때다.

'시술이 없는' 달. 그 한 달을 나는

방학이라고 부른다.


학교 다닐 땐 방학이 참 기다려졌는데, 난임 방학은 그리 반갑게 맞아지지가 않는다.

나이 들수록 한 달, 한 달이 다르고 아깝기 때문에.

그래도 시술받는 동안은 하지 못하는 걸 찾아 하며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한다.


처음엔 주로 여행을 갔다. 시술 동안은 장거리 이동도, 낯선 음식이나 환경도 피해야 하니까.

다른 공기, 다른 바람을 쐬며 기분전환은 됐다. 하지만 듣기 좋은 파도소리도 한두 번.

시술 비용으로 가벼워진 통장으론 국내여행 경비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엔 새로운 취미를 배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 안엔 취미 하나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필라테스는 생각보다 동작이 과격해서 시술 없는 달에만 띄엄띄엄하다 보니 도통 늘지가 않았다.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제빵은 시술 중에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호기롭게 3개월 과정을 등록했는데,

무거운 걸 들거나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의외로 많아 중도 포기해야 했다.


시험관 시작 때 두세 번 안엔 성공할 거라며 용기를 줬던 선생님은, 세 번의 실패 후 반복 착상 검사를 권했다.

채혈만 하면 되니 검사는 간단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 한 달을 쉬어가기로 했다.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들어서, (검사 비용은 무거웠지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10월의 방학을 맞이했다.


이번 방학엔 뭘 해볼까 고민하는데, 퇴근하는 남편 옆구리에 커다란 선물상자가 끼워져 있었다.

뭔가 해맑으면서도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은 어린애의 표정으로 남편이 건넨 선물은...



돈도 내가 내고, 시간과 공도 내가 들여 완성하는 장난감, 레고였다.

회사 동료가 사정상 레고를 여러 개 팔아야 한다고 해서 하나 사줬다고 한다. 아이도 없는 집에 장난감을 강매하다니, 그 동료 진짜 못됐다고 씩씩댔지만, 상자에 박힌 완성품의 사진은 또 제법 예뻐 보였다.

중학생 조카에게 선물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 애도 레고 갖고 놀기엔 너무 큰 거 아닌가 싶어, 그냥 우리가 (결론적으론 내가) 만들기로 했다. 시술도 쉬고 심심할 텐데 잘 됐다며, 짬짬이, 천천히 만들어보라는 남편. (남편은 내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참 무료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찾아서 하면 집안일도 꽤 되고, 나중을 위해 글도 쓰고 책도 읽으려니 심심할 틈이 없다고 반박하고 싶지만... 어쩐지 구차하다. 그냥 심심한 걸로 하자.)

나도 (한 번에 만들어버리자니 왠지 돈이 아까워) 조금씩 차분히 며칠에 걸쳐서 만들려고 했는데.



선물 받은 다음 날 한나절만에 끝내버리고 말았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서.

어릴 때도 레고는 거의 안 해봤어서 쉽지는 않았다. 손톱 끝만 한 부품들 찾느라 눈도 침침해졌고, 잔뜩 집중한 채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팠다. 그런데 이 팔뚝만 한 장난감 하나 만들어낸 게, 이게 뭐라고 혼자 되게 뿌듯했다.  


퇴근한 남편과 이 꼬마 캠핑카를 이리저리 굴려보고 여기저기 올려놔보며 속없이 놀다가, 문득, 이번 방학 때 할 일이 떠올랐다.


- 한 달이면 딸 수 있겠지?

- 뭘?

- 운전면허!


그렇다. 난 나이 마흔 다 되도록 운전면허가 없었다...


시도는 한 적이 있다. 대학교 3학년 땐가? 여름방학 동안 면허를 따리라 맘먹고 도전했는데, 기능을 네 번 떨어지고 주행을 세 번 떨어지다 보니 어느새 방학이 끝나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챙피해서 친구들한테 말하지도 못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지만, 또 내가 잘 못하는 건 금방 포기해 버리는 성격이어서, 아까운 학원비만 날리고 그대로 때려쳐 버렸다.


한동안은 면허가 별로 아쉽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싫지 않기도 하고, 필요할 땐 아빠 차, 남편 차를 얻어 타면 됐으니까. 그런데 요 몇 년 전부터 아빠가 운전대 잡는 걸 점점 주저하게 되고, 남편은 업무상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운전하는 걸 싫어하게 됐고, 친정 행사로 운전할 사람이 필요할 때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게 미안하면서도 치사해지기 시작하자, 이제라도 운전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던 차였다.


세월이 흘러 학원비는 껑충 뛰었고 가까운 학원은 폐업해서 멀리까지 다녀야 하지만, 왠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도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학원비는 남편한테 협찬받았다. 길게 보면 앞으로 들 대리비보다는 쌀 거라는 말로 설득할 수 있었다.


재응시료가 너무너무 아까워서 정말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수업 때도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했고, 시험장 가는 길엔 유튜브 동영상을 속이 울렁거릴 때까지 반복해서 봤다. 기능에서 (어이없게 시간초과만으로)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결국 3주 만에 운전면허를 따냈다. 만세! 이거 진짜 진짜 진짜 뿌듯했다.

 

시술 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필요한 건 여행이나 새로운 취미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낮은 수정률, 느린 분열 속도, 배아 등급 하급,

테스트기 음성, 피검사 0점으로 비임신, 생리로 비임신 재확인...

온통 아쉬움과 실패의 경험만 반복하고 있던 내게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성공의 경험'이 필요했나 보다.


오랫동안 저기압이었던 마음이 둥실 떠올랐다. 지하에서 생활하다 지상으로 올라와 햇볕을 쬔 기분이다. 가족들도 표정이 좋아졌다고 해준다. 운전면허는 합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점점 활용도가 높아질 거라는 게 더 좋다. 지금까지보다  쓸모 있는 사람, 활동성 높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운전면허  말고도 한 달 안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뭐든, 오랜 난임 시술로 활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거 꽤 기분전환이 된다. 여행보다 더. 취미나 공부나 봉사만큼이나.

 

합격한 날의 기쁨이 지금 돌아봐도 생생하다.

참 오랜만에,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다녔다.


그리고 며칠 후, 참 오랜만에, 다음 날 눈이 퉁퉁 부을 걸 알면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 밤이 있었다.


대부분은 정상으로 나온다던 검사 결과를 들은 날.

1년이라는 짧지 않은 난임 생활을 한 순간에 '전반전'으로 만들어버린 날이었다.

이제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전반전보다 험난할 후반전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방학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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