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안 돼도 공예작가는 계속하고 싶어 00.

재료비에 쪼들리지만 결국 새로운 재료를 탐하고 마는 아마추어 작가의 일기

by Lunarglasskr

처음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고, 내 이야기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처음 검색했던 것은 `레진 공예`였다. 나와 같은 레진 공예 작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했다. 결과는 조금 슬펐다. 레진 공예를 주로 하시는 분은 드물었다. 조금 우울해 하다가 생각해냈다. 이거, 블루오션이라는 거 아냐?


마법소녀로 길러진 90년대생의 필연적 취미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쩔 수 없이 레진 공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웨딩*치와 세일*문, 카드*터 체리, 꼬마*녀 도*미와 슈가슈* 룬을 보고 자란, 티브이 앞에서 사랑스러운 마법소녀들을 기다리며 자란 초등학생. 어린 시절부터 내 별명은 까마귀였다. 반짝이는 장신구를 좋아했고 공주님 같은 드레스와 원피스에 환장했다. 용돈이 생기면 온갖 액세서리를 사느라 정신없던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소위 말해 `오타쿠` 새싹이 되어버린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도 뚝심 있게 나는 반짝이는 온갖 것들을 사랑했다.


나름대로 손재주가 있었는지 고등학교를 공고(지금은 특성화고가 되었다.)에 들어가 제과제빵을 전공하고, 허술한 시대라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아르바이트할 수 있게 되면서 까마귀 병은 더 심해졌었다. 로코코 시대에나 쓸 법한 화려한 큐빅 귀걸이와 목걸이, 로리타와 펑크 그 어드메에 있는 옷을 입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치며 그것이 꽤 괜찮은, 나와 잘 어울리는 패션인 줄 알았다.


지방에서 살다 수도권으로 올라와서는 과도기까지 맞았다. 퍼스널 컬러고 뭐고 전혀 없는 화려한 화장까지 더해진 것이다. 한술 더 떠 눈썹은 안 그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좋은 기회들 또한 있었는데 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참여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학교 웹진에 투고할 기회도 생겼다. 덕분에 인생 처음으로 홀로 후쿠오카 여행을 갈 수 있었다.


하카타역에 붙어있는 쇼핑몰 한 층의 도큐핸즈,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레진 공예와 만났다.


그때는 뭔가 미니어처 기술의 일부인 줄 알았다. 그나마도 국내에는 재료를 어디서 파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정보도 없었고 검색할 생각도 없었다. 2010년대 중반에야 조금씩 레진 공예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가끔 트위터에 올라오는 작가님들-소위 말하는 존잘님들-의 작품을 사거나, 예쁘다며 앓는 정도였다.


그때쯤의 나는 꽤 많이 불행했던 것 같다. 제과제빵을 전공했지만, 전공으로 그럴듯한 직장을 얻지 못했고, 흥미를 느끼고 할 수 있는 일이 도무지 없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다가 휴일은 카페 탐방이나, 한 벌에 3만 원이 되지 않는 보세 옷들 속에서 필사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옷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액세서리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왜 이리도 심플한 걸 사랑하는지. 나처럼 화려한 걸 사랑하는 사람은 정녕 없는 건지. 아니, 내가 사겠다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걸 만들어 파는 사람은 정녕 없는 건지.


월세 스트레스에 찌들어가다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해외 취업을 결정하자 긴 방황과 함께 자취생활을 접고 다시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냥 나도 만들어 보면 되는 거 아냐?


20180724105846_IMG_3434.JPG 레진 공예를 처음 접했을 무렵에 만들었던 액세서리.


언어도 익숙지 못했던 일본에서 만나 이해조차 포기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한 2~3년 만에 레진 공예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많아져 있었다. 설명도 꽤 상세했다. - 작고 소중한 퇴직금과 백수라는 신분을 레진 공예에 쏟아부으니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정말 예뻐 보이는 건 전부 만들었다. 비녀와 작은 핀, 브로치와 온갖 액세서리…. 그중에 특히 비녀를 좋아했던 나는 한 세 달 정도는 집요하게 비녀만 만들었던 것 같다. 어디서 재료를 사야 하는지도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 가장 많이 쓴다는 레진 쇼핑몰과 동대문을 쏘다녔다. 인천, 그것도 꽤 끝자락인 나는 왕복에만 5시간씩 걸렸고 다녀오고 나면 늘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드디어 내 취향의 무언가가 눈에 구현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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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조금 부끄러운, 처음 입문해서 만든 18년도 작품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여 놀랐....다?

하지만 어떤 일이나 한계는 있는 법. 계획 없이 사들인 재료와 완성만 하고 어딘가에 처박아두기 시작한 작품들로 방안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레진으로도 모자라 체코 글라스라고 불리는 색유리 비즈에까지 눈을 돌렸다. 방은 자꾸자꾸 좁아지고 엉망이 되었다. 보관함을 사고 여기저기 욱여넣어도 재료들은 넘쳐났다.


그리고 그때야 나는, 플리마켓이라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즐거운 불행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