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자리는 안되는 자리다
조용한 카페와 번잡한 카페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시나요? 개인적 취향이 있겠지만 저는 조용한 카페를 더 선호합니다. 카페에서 주로 하는 것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나 책을 읽거나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사람이 많고 소음이 많은 곳보다는 다소 사람이 적고 조용한 곳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커피 맛이 있으면서 조용한 카페를 주요 거점마다 알고 애용합니다. 물론 이런 취향을 가진 분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SNS에 단골 카페를 올리시는 분들은 엄청 많이 알고 있는 카페도 있겠지만 나만이 알 거 같은 조용한 카페를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입니다. 조용한 카페를 오랜 기간 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장사가 되어야 카페가 버티는데 너무 조용해서는 철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좋아하던 카페 중 일부는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데 롱런하는 카페를 찾는 것은 소비자인 저의 고민만은 아닙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마찬가지, 더 할 겁니다.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주요 부자가 된 재벌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몇 년 전에 큰 사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런 노골적인 제목이 흥행에 한 몫 했으리라 보지만 내용도 밑줄 그을 게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싸게 사는 것이 핵심이다'란 것입니다. 장사란 높은 가격에 파는 것보다 낮은 가격에 사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끔 지방 도시를 가보면 이미 시들해진 상권에 아직 많은 가게들이 운영 중인 것을 보게 됩니다. 주변의 월 임차료와 직원 비용, 각종 부대비용을 보면 몇 천만원 되지 않는 매출액으로도 충분히 견딜만한 낮은 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달에 이런 작은 가게 사장님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사실 지방 거점 도시의 핵심 상권보다 높은 곳도 있습니다. 서울 등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이미 알려진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의 안되는 자리에서 간판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 이런 알짜 자리는 더욱 귀해 보입니다. 기업에서도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실속 있는 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점포가 꼭 상권의 중앙에서 눈에 잘 띄는 위치를 고집함이 아니고 지하든 2층이든 조금 외곽의 자리라도 비용대비 매출이 나오는 자리를 찾기 위해 시나리오를 짜서 수익성을 검토합니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예상 매출을 걸어놓고 오픈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비슷한 컨디션의 매장에서 나오는 최상의 매출을 여기에 걸고 이익이 나오는 시뮬레이션을 걸고 입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포 개발팀은 사실 목표 성과에 오픈 점포 개수만 있지 오픈한 점포의 총 누적 이익액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에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픈하고 매출이 안 나올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픈 시에 마구 쓴 고정비는 나중에 두고두고 부담이 됩니다. 무책임한 기업은 오픈할 때 많은 직원을 뽑고 매출이 안나오면 그 다음달부터 줄이기 시작합니다. 직원이 12명인 매장이 3개월 뒤에는 6명 이하로 줄어 있습니다. 사장이나 본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 했다고 말하면서 성과를 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나간 6명의 직원이나 있는 6명의 직원은 어떤 심정일까요? 서비스업에서는 이런 작은 분위기가 고객과의 접점을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용 최적화는 인테리어 비용 최적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은 몇 개의 점포를 입찰제로 묶어서 단가를 낮추고 내부에 들어가는 인테리어 원자재를 외국에서 낮은 가격에 벌크로 사 옵니다. 물론 벌크로 사온 인테리어 원자재를 보관하고 통관하는 데 누수가 있어 안하느니만 못한 일도 벌어지기도 합니다. 실제 목재 종류들은 국내 점포에서 사용하는 인테리어 원자재가 해외에서 구매한다고 무조건 싼 게 아니고 국내에서 더 구하기 쉬운 재료도 많기 때문입니다.
상권은 점점 임차료가 높아지면서 원가율이 괜찮은 아이템만 상권의 중심에 남습니다. 주로 액체 장사나 금융업 등이죠. 원가율이 박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아서 이익액을 얻어가는 사업은 상권 외곽에 점포 크기로 고객을 불러 모읍니다. 가로수길이나 명동을 가보면 상권의 중앙과 외곽에 어떤 아이템이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이것은 모두 점포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최적화의 모습입니다.
결국 조용한 카페 중에 롱런 하는 것은 처음부터 상권의 외곽에 낮은 임차료 자리에서 고유한 맛으로 알려진 사람에게만 알려진채로 시작한 곳들입니다. 높은 유동을 자랑하는 상권에 들어왔지만 건물주만 좋은 일 시키고 접는 사업은 외양만 좋지 실속이 없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물론 비용구조만으로 사업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카페에 가는 목적이 커피만 마시는 것도 아니고 커피 맛에 특별한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서 말한 것 같이 공동 작업용으로 독서용이라면 와이파이나 콘센트 개수와 위치, 가구의 편의성 등 요즘 카페는 더 커피 외부적인 요인이 사업의 재정의를 통해 더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스타벅스를 보면 세계 어디서든 표준적인 서비스를 떠 올리고 커피부터 베이커리/샐러드, 인터넷 사용부터 전원 확보, 화장실과 가구까지 무엇이든 안정된 재화와 서비스가 있음에 안도합니다. 반면 시내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지만 와이파이가 없다든지 전원 콘센트가 거의 없는 점포는 다른 이유로 외면 받습니다. 소파와 테이블의 상태, 에어컨이나 히터의 적절한 가동도 경쟁이 치열한 카페(라 쓰고 '공간 사업'이라 부르는) 시장에서 무시못할 요인으로 떠 올랐습니다.
주식 시장에서 개별 종목이 아무리 상승세가 좋더라도 전체 시장, 세계와 국가의 경기가 개별 주식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70% 정도라는 이야기를 투자 공부를 하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무슨 법칙인데...) 장사에서 위치의 중요성이 이 정도라고 예전에 많이 말해왔습니다. 안되는 자리는 안되죠, 계속. 하지만 이 자리는 유독 이 라인에서 쑥 들어가서 매장 정면이 고객에게 잘 안 보여서도 아니고, 전면이 너무 좁아서 존재감이 미미해서도 아니고, 매장이 너무 작아서 고객이 안 들어가고 싶어서도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그냥 그 자리가 나올 매출에 비해 임차료가 너무 비싸서, 관리비가 이 정도는 아니어서일 경우가 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주인이 세 번 바뀐 카페에 들어왔다가 생각이 나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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