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놀이 그만해야 할 때
대기업이 크니까 스타트업보다 느린 게 당연하죠?
대기업이 스타트업보다 느리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경영학의 도시전설처럼 왜 그런지는 명확치는 않지만 상식선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실제로 기업의 크기가 커질수록 주요 해결과제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상대적으로 투자할 자금도 많고 여기저기서 뽑아둔 인재도 많고 협력하고자 부릅뜨고 있는 관계사들도 많은데 느린 게 정석처럼 받아들여지고 또 실제 그러니 놀랍기까지 합니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대기업'이란 것도 하나의 껍데기란 것을 알게 됩니다. 소소히 들여다보면 서로 시너지가 잘 나지 않는 작은 부문들의 집합이 대기업일 때가 많으니까요. 경영진은 신규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고 관리자로서 흔히 말하는 돈, 사람, 영업망 관리 등을 하는 그런 일만 하고 있습니다. 실무진은 이 시너지 나지 않는 부문의 집합 사이에서 균형과 형평성, 보안 등의 이유로 엄청난 길이의 보고와 결제 라인으로 뜻을 펴지 못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전사적 - 기업 전체가 역량을 모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 과제는 정말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사 단위, 그룹 단위로 역량을 집중한다는 것이 자본 외에는 더 이상 가시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아무개' 기업도 전사적으로 뭔가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존에 오랫동안 회사명과 제품명이 같지 않냐는 오해를 받는 제품 외에 뚜렷한 미래 먹거리가 보이지 않고 고객의 생활 철학은 이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장은 개발부서와 재무부서, 영업부서, 생산부서를 모두 모아두고 소비자 조사를 새로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양산에 들어갈 로드맵을 짜 보라고 합니다. 모인 팀장들은 기존에 잘 팔리는 대표 모델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깜깜이로 본격적인 회의를 다음 주로 미룹니다. 보고 기한까지 최대한 시간을 쓰죠. 이 로드맵의 주무부서, 책임자도 개발부서의 팀장으로 이미 정해져있습니다. 하지만 팀장이 이것만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죠. 이미 잘 팔리고 있는 모델의 변형과 보완에 대해 매주 단위로 경영진에 보고해야 하는 일도 있구요. 사실 사장은 모든 것을 놓치려 하지 않죠. 기존 모델의 판매상황과 고객 피드백, 그것이 반영된 새로운 버전의 기존 모델에 대한 회의를 정기적으로 꾸려갑니다. 이에 개발부서만 아니라 재무, 영업, 생산 모두 여기 신경을 쓰고 있죠. 새로운 모델에 대한 로드맵은 작성이 되지만 지킬 수 없고 관심도 덜한 요식행위의 로드맵이 만들어지고 사장이 소리지르기 전까지 이것은 답보상태가 됩니다. 물론 사장이 문제죠. 사장은 스스로 외부 업체와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까지 물고 옵니다. 물론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이슈가 퍼져나갈 때 내부에서는 뭘해야 할지 제한된 시간에 사람과 자원을 나누는 일이 매우 버거워집니다. 분위기가 팍팍하게 되죠.
기업에서의 '집중'이란 것은 어떻게 실현될까요?
'아무개' 회사의 신제품 개발은 아마 해를 넘기고 또 넘기거나 아니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신제품인 것처럼 해놓고 기존 모델을 가감해서 만들죠. 그래서 위기를 맞습니다. 새로운 모델을 어떻게 만드는지 잊어버렸죠. 잊어버린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집중하는 사장에 있습니다. 사장이 여러가지 컨텐츠에 관심이 있거나 컨텐츠가 아닌 업무 프로세스만 관심이 있으면 어느 경우든 신제품은 멋지게 티핑할 수 없습니다. 집중하는 결과물이 분명하라고 직원들에게는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는 집중하는 결과물이 분명치 않은 거죠. 분명하지 않은 결과물일수록 보고서와 언변으로 속이고 이것이 기업 문화를 지루하게 만듭니다. 편하지 않고 위기만 강조하는 기업문화가 내부 정치꾼을 통해 생겨납니다.
몇 달을 쉬고 회사를 와도, 1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회사를 나와도 이 회사의 해결과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해결 과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제대로 안하니까 과제가 그대로 있습니다. 이 사이 사람들이 바뀌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충분한 설명 없이 이 일을 물려 받으면 정확히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보고서와 언변으로 시간을 보낼 뿐입니다. 이쯤되면 뭔가 해본다는 것이 겁나죠. 이미 지나버린 시간이 많기에 결과물의 퀄리티가 비용대비 나오지 않는다면 무서워지기 때문에 비용도 쓰지 않고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무력하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원인을 고치는 것이죠. 경영진입니다. 직원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 믿는 것은 완벽한 성과급 100% 기업에서나 생존을 위해 가능한, 개인 사업자의 조합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대로 관리하는 관리자는 유효한 기능인데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영진이 바른 방향으로 일을 몰고가지 않기에 모든 게 다 흩어지는 것입니다. 경영진은 리스키해 보이는 일이라도 기업의 역량을 여기 올인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 방식은 이런 것을 하나씩 매듭지으면서 다른 바구니를 찾는 것이지 한 가지 일을 할 때는 그것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장들은 사장 놀이에 바쁘죠. 이것도 저것도 챙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보고는 현상의 앎에 불과하지 무엇인가를 도모할 때 파생되는 효과와 대안을 내는 형식이 아닙니다.
해결과제의 가짓 수를 줄여야 합니다. 정말 한 가지만 물고 늘어지면 안될 게 없습니다. 성과가 안나도 실패해도 그것을 토대로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지만 안 하는 일을 더 할 수는 없죠. 물론 문제가 있는 피동적인 조직은 한 번 만들고 다음 버전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일을 해치우고 또 다른 일을 해치우고 이렇게 하면 일이 되는 줄 알죠. 그러나 하나의 일을 시작하면 그 과제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자원도 성과 목표도 그대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기간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비해 보다 덜해지고 매니저는 주도권을 더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때까지는 경영자는 이것만 해결해야 합니다. 이 쉬워보이는 단어를 경영자는 자기 스스로를 꾸준히 제어하지 못해 상당 부분은 하지 못합니다. 괴로운 일을 지루하게 하는 능력이 경영자의 역량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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