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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ep 02. 2016

맞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자

직장인으로 생존하는 법

제가 사회생활을 처음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첫 직장에서 무능력한 팀장님 밑에 에이스 과장님이 있었습니다. 'S' 평가를 직전 연도 2번 연속 받은 과장님은 기획 분야에서 밀어주는 인재였고, 제 사수였죠. 회계에 능했고 소위 말하는 엑신(엑셀의 신)이자 스마트한 성격, 온화한 리더십, 회식 자리의 흑기사였습니다. 무난한 사업 구조에 무난한 직원들이 무채색으로 살아가고 있는 직장에서 에이스 과장님은 좀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과장님은 평소에는 냉철함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혈질로 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과장님과 함께 일하다가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날도 그랬습니다. 점심 시간을 앞두고 우리는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중장기 경영계획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CFO가 주문한 옵션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야근과 숙식까지 했던 일이었죠. 기획 업무의 특성상 수정작업이 잦을 수 밖에 없는데 이미 지친 우리 팀은 이제 지리한 수정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드라인과 에너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과장님은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신입인 제가 느끼기에 높은 부서에서 온 전화였는데 환율 시나리오를 다시 만들어서 주말에 보자는 내용인 것 같았습니다. 이미 환율 시나리오는 몇 번을 돌린 상태였는데 이번 주문은 사실 또 바꿀 명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마친 과장님은 막 화를 내고 수화기를 던져 버렸습니다. 그럴만 해 보였습니다. 몇 주 동안 작업한 것을 무의로 돌리면서 다시 주말까지 일해야 하다니 위에서 시킨 일에 힘 빠질만 했습니다. 우리는 점심 시간 방송이 한참 지나도록 자리에 앉아 무거운 분위기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내뱉은 과장님의 한 마디는 7,8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만큼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래, 맞는 일이라면 해야지"


직장인으로서 계속되는 수정과 보고, 다시 수정과 보고는 사람 진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물론 이렇게 계속 수정이 나도록 처음부터 제대로 시키지 않는 상사는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워도 짜증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지나갑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것을 하지 않으면 혹은 늦게 해서 퀄리티가 낮으면 결국 나만 손해인 경우가 많습니다. 병맛같은 시간에도 정신줄을 잡아야 하는 것도 결국 나 때문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멍하니 한 동안 있다가 결국 허겁지겁 일을 하니까 나중에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이 그럴 겁니다.


과장님과 우리 팀이 다시 주말까지 환율 시뮬레이션을 보완하고 중장기 경영계획을 완성하고 환율은 요동쳤고 중장기 계획은 회사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품의 원가가 올라가면서도 우리는 주어진 시나리오대로 재무적 방법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과장님이 빨리 팀의 정신줄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우리 팀의 성과도 회사에 도움도 별로 많이 되지는 않았겠죠. (그리고 추가 특근을 했겠죠;;)


맞는 일이라면 더러워도 맞다고 인정하는 게 빠른 길입니다. 개인 사업자라면 하지 않을 고민과 짜증을 직장에서 하부 조직으로 살면서 받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지금 월급 받고 있는 직장에서 올바른 전략과 프로세스로의 제안이 아닌 감정의 보상을 요하는 시간적 공백이나 클레임은 결국 나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쌓일 뿐입니다. 물론 부정한 일이나 오버스펙을 갖추는 일 따위까지 이럴 필요는 없겠죠.


말 그대로

"그래, 맞는 일이라면 해야지"


냉정하게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시간이 한정적인 자원이라면 맞는 일을 하는데 시간의 뜸을 다시 많이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직장 안에 있을 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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